산에 묘지를 없애고 유골을 화장하도록 한 북한 당국의 지시에 따라 매해 추석이면 준비한 제사 음식을 가지고 산에 가던 풍습이 사라지는 추세라고 소식통이 전해왔다. 실제로 올해는 많은 북한 주민이 산에 갈 대신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전언이다.
15일 데일리NK 양강도 소식통은 “국가적 지시에 따라 조상묘를 없앤 혜산시의 많은 주민 세대가 올해 추석에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게 됐다”며 “산에 가지 않고 집에서 제사를 지내게 된 것에 대한 주민들 반응은 대부분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산림복구’를 명목으로 산에 있는 모든 묘지를 없애고 유골을 화장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오고 있다. 당국은 이 같은 지시를 집행하지 않으면 국가가 자체적으로 묘지를 처리할 것이라고 통보해 주민 대부분이 조상 묘를 철거한 상태로 전해졌다.
초반에는 이에 불만을 제기하는 주민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묫자리가 좋으면 집안일이 잘 풀린다고 여겨 좋은 묫자리를 찾으려 돈을 들여 점쟁이를 찾아가기도 하고 묫자리를 일부러 옮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조상 묘를 철거하는 것이 후환을 초래할까 두려웠고, 또 화장 처리 비용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아 지시 집행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당국의 계속되는 경고와 이행 요구에 꿈쩍이지 않고 버티던 주민들도 이제는 대부분 지시를 받들고 있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이런 가운데 주민들은 조상 묘를 없애 추석 때 산에서 제사 지내지 못하고 대신 집에서 지내게 된 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소식통은 “주민들은 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야 했던 예전의 방식보다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훨씬 더 편리하다고 말하고 있다”며 “형편이 어려워 음식을 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옆에 성묘를 온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불편함을 겪는 일이 많았으나 이제는 그런 일을 겪을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조상 묘가 멀리 있는 주민들의 경우에는 새벽같이 출발해 제사 지내고 돌아오는 것이 힘든 일이었는데, 이제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게 됐으니 훨씬 부담을 덜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식통은 “잘사는 집은 고기, 물고기, 과일 등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는 반면, 생활이 어려운 집은 여러 음식을 준비하지 못하더라도 수준에 맞게 정성껏 제사 지내려 한다”며 “사람들은 집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면서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음식을 준비하게 돼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혜산시의 한 40대 주민은 “작년 봄에 묘를 없애지 않으면 주인 없는 묘로 처리하겠다는 통보에 아버지 묘를 철거하고 유골을 화장했다”며 “그래서 올해부터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게 됐는데 20리 떨어진 곳까지 음식을 이고 가지 않아도 돼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이어 이 주민은 “제사 지내러 갈 때마다 다른 집들은 정말 많은 음식을 준비해 오는데 우리는 그럴 형편이 안 돼 초라하게 상을 차려 제사를 지내 내내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그런 불편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위기에 근래 혜산시에서는 묘를 끝까지 철거하지 않으려던 세대들도 하나둘 묘 철거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