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여물지도 않은 벼 훔쳐가는 사건 잇따라…이유 들어보니…

"추석에라도 쌀밥 한 끼 먹고 싶어서"…여물지 않은 벼를 온전한 흰쌀로 만드는 비법 퍼져 화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3년 9월 24일 “당이 제시한 알곡 생산 목표를 기어이 점령하기 위한 투쟁이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힘차게 벌어지고 있는 속에 태풍 6호에 의한 피해를 입었던 안변군 오계농장과 월랑농장의 포전들에서 가을걷이가 한창”이라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이달 초 북한 황해남도 벽동군에서 주민들이 채 여물지 않은 벼를 베어 훔쳐가는 사건이 잇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추석을 앞두고 ‘명절만이라도 쌀밥 한 끼 먹어보자’는 주민들의 절박한 생활고가 반영된 사태라는 게 소식통의 말이다.

15일 데일리NK 황해남도 소식통은 “이달 초 벽동군의 여러 농장에서 아직 수확기에 이르지 않은 벼 이삭들이 잘려 나가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이에 농장들에서는 예년보다 일찍 경비를 조직하고 벼 도둑을 막기 위한 경비 활동에 나섰다”고 전했다.

작년 이맘때에는 수확에 임박해 경비를 조직했지만, 올해는 본격적으로 수확하기도 전에 벼를 모두 도난당할 수 있다는 것으로 경비를 훨씬 이른 시점에 조직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그동안에는 주로 수확한 벼를 훔쳐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9월 초부터 경비를 조직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는 이달 들어서자마자 채 여물지 않은 벼를 훔쳐 가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나면서 예년보다 일찍 경비가 조직됐다는 것이다.

북한에는 추석 제사상에 햅쌀로 지은 제삿밥을 올리거나 햇곡식으로 만든 음식을 만들어 가족들과 나눠 먹는 풍습이 있어 추석 전에 올벼(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벼)를 수확해 주민들에게 명절용으로 소량을 공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급량이 워낙 적고 한정적이어서 곡창지대에 사는 주민들조차 햅쌀을 구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우리나라(북한)의 주요 곡창지대인 황해남도는 올벼 재배와 수확이 비교적 활발한 지역이지만, 추석 명절용 햇쌀(햅쌀)은 농사를 짓는 농장원들에게조차 차려지기(분배되기) 힘든 실정”이라면서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곡창지대에 살면서 추석에 자식들에게 쌀밥 한 끼 먹이고 싶다는 심정으로 아직 여물지 않아 수확 전인 일부 농장의 벼를 훔치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달 초 벽성군의 한 리에서 여물지 않은 벼 이삭을 잘라 달아나다 농장 경비원에게 붙잡힌 주민들은 하나같이 ‘추석에라도 가족들과 쌀밥 한 끼 먹고 싶었다’는 이유를 대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한 선처를 호소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이번에 붙잡힌 주민들을 통해 여물지 않은 벼 이삭을 가져다가 여문 벼를 도정한 흰 쌀처럼 만들 수 있는 비법이 전해지면서 주민들 사이에 화젯거리로 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소식통은 “물을 가열해서 나오는 증기로 여물지 않은 벼 이삭을 적당한 시간 동안 쪘다가 그늘에서 천천히 말리면 여물어 수확한 벼를 정미(도정)한 것처럼 흠 없는 흰 쌀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들이 이야기하는 비법”이라며 “이것이 소문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도둑질에 대한 것보다 이 비법이 더 큰 화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물지 않은 벼는 쌀알이 잘 부서지는데, 사람들이 온전한 쌀처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이런 방법까지 찾아낸 것을 보면 먹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2일 4면 기사를 통해 “각지 농촌들에서 벼가을이 시작됐다”며 “올해 농사를 성과적으로 결속할 일념 안고 농업부문 일꾼들과 근로자들, 지원자들이 벼가을에 일제히 떨쳐나섰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