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해외에 파견된 자국 노동자들에게 수해 복구 비용 명목으로 외화 헌납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수해복구 지원을 거부하고 ‘자력 복구’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국 자금 마련을 위해 주민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22일 데일리NK의 러시아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이달 초 러시아에 나와 있는 모든 무역회사에 수해 복구 명목으로 이달 말까지 노동자 1인당 70달러씩의 자금을 바치게 하라는 과제를 하달했다.
이 같은 지시를 받은 북한 무역회사들은 이름은 무역회사지만 산하에 북한 건설 노동자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을 거느리고 있는 사실상의 인력 관리 회사들이다.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건설 노동자들은 크게 사민(事民·민간인)과 군인 노동자로 나뉘는데, 이번 자금 납부 지시는 사민과 군인 노동자를 관리하는 모든 회사에 일괄적으로 내려졌다는 전언이다.
사민 건설 노동자들의 월 급여는 직급이나 작업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200~300달러를 버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군인 노동자들은 의무적인 군 복무 대신 러시아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월급이 매우 적은데, 한 달에 평균 100달러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러시아 측 업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매월 2000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이 중 일부는 당자금이나 청년동맹비 등으로 자동 공제되고, 이들을 관리하는 무역회사가 매달 1인당 1000달러 이상을 갈취하고 있다.
수해 복구 비용 명목의 당자금까지 납부하고 나면 이달 군인 노동자들이 손에 쥐는 돈은 30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러시아에 파견된 노동자 수는 최소 4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이 모두 70달러를 당국에 납부한다면 이달 북한 당국이 거둬들이는 비용이 280만 달러(한화 약 37억 2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자 러시아에 파견된 노동자들 사이에선 “국가가 수해 복구에 필요한 자금을 걷는다고 하면서 외화벌이하는 것 아니냐”는 날선 비난도 터져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이 전한 바에 따르면 한 노동자는 “매달 내는 돈은 어디다 쓰고 수해 복구한다고 구실을 붙여서 또 돈을 뜯어내냐, 월급도 얼마 안 되는데 이달은 하루 종일 쉴새없이 일하고 돈은 하나도 못 받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노동자는 “수해 복구를 자력으로 한다더니 결국에는 외국에 나와 있는 우리 같은 노동자들한테서 돈을 뜯어내는 것이냐”며 당국의 국제 지원 거절 조치에 대해서도 비판을 쏟아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난 8~9일 평안북도 의주군 수해 지역 이재민들에게 한 연설에서 “지금 여러 나라들과 국제기구들에서 우리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할 의향을 전해오고 있지만 자체의 힘과 노력으로 자기의 앞길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국제사회의 지원 제안에 거부 의사를 표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대신 국내외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해 복구 비용 헌납을 요구하고 있다. 평안북도의 경우 수해 지역에 전달한다며 이달 초 1인당 북한 돈 2~3만원을 납부하게 했고, 자강도에서도 현금 1만원과 백미 3kg, 옥수수 3kg을 주민들에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