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교화법에 따라 남녀 무기수들을 함흥교화소와 개천교화소에 나눠 관리한다.
코로나 초기인 2020년, 당시 개천교화소에 수감된 여성 무기수들은 병마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편직물, 뜨개물, 가발, 속눈썹 등 수출품 생산에 매진해야 했다.
교화소 생산과는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기 전 받았던 자재들을 소화하는 데 열중하며 여성 무기수들을 다그쳤다. 결핵이나 영양실조로 ‘허약 병방(病房)’에 격리돼 있던 여성 무기수들도 예외 없이 강제노동에 내몰렸다.
이후 거의 2년간 자재 수입이 중단되면서 수출품 생산을 기본 징벌과제로 수행하던 개천교화소 여성 무기수들은 더 이상 생산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그 대신 이들은 모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교화소는 여성 무기수들을 그냥 가만히 놔둘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매일 아침 6시 기상해 위대성과 교화 규정 및 규범을 통달시키고, 교화소 건물이나 감방 내외부 청소, 운동장 달리기, 상하차 작업, 물 긷기 등 온갖 일을 시켰다.
2022년 8월 북한이 코로나 종식을 선언한 후 개천교화소는 상급 기관인 사회안전성 교화국으로부터 자재 수입을 허가받고 수출품 생산을 재개했다. 이로써 여성 무기수들은 감방과 생산 현장만을 오가며 매일 16시간씩 작업에 투입됐다. 밤낮없이 웅웅대는 기계 소음 속에서 손끝이 굳고, 갈라지고, 피고름이 나와도 멈추지 않고 일해야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 여성 무기수들의 건강은 날로 악화해 갔지만, 개천교화소는 무기수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치료나 제대로 된 휴식 시간도 제공하지 않았다.
2020년 초부터 2022년 8월까지 교화소에서 사망한 여성 무기수는 총 수용 인원 500여 명 중 40여 명에 달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쉼 없이 일해야 했던 무기수들의 삶은 비참했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독방 처벌이 내려지는 엄격한 관리·감독 체계에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했다.
교화소는 오직 생산만을 강요하며 무기수들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았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는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교화소에서 내놓은 수출품은 여성 무기수들의 인권을 참혹하게 유린한 결과물이었다.
현재도 이들이 생산한 편직물, 뜨개물, 가발, 속눈썹 등이 중국에 수출돼 2차, 3차 가공을 거쳐 인터넷 플랫폼으로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
구매자들은 이 제품들이 기계 소리로 가득 찬 캄캄한 교화소 내부에서 16시간씩 쉬지 않고 일하는 북한 여성 무기수들의 피와 땀, 눈물이 뒤섞인 강제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