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북 구성시 주민 20여 명 줄줄이 엮여 사상투쟁회의 무대에

한국 영화 시청·유포한 것으로 붙잡혀…'썩고 병든 자본주의 퇴폐문화 유포자'로 단죄돼

북한 평안북도 청수공업지구의 한 건물에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 조국에’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사진=데일리NK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이른바 ‘남조선 불순 녹화물’을 시청·유포한 주민 20여 명이 줄줄이 붙잡혀 사상투쟁회의 연단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평안북도 소식통은 26일 데일리NK에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남조선(남한) 영화, 노래 등을 메모리(USB)에 복사해 유포한 한 사건에 20여 명의 주민이 엮여 이달 중순 구성공작기계공장 회관에서 사상투쟁회의가 진행됐다”고 전했다.

소식통이 전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구성공작기계공장의 한 노동자는 9·9절(북한 정권수립일) 전날인 이달 8일 밤 공장 경비를 서면서 수직실 문을 닫아걸고 창문도 모두 가린 뒤 액정 TV에 USB를 꽂고 한국 영화 등을 시청했다.

그러나 곧 야간순찰에 나선 안전부 소속 사민 순찰대원에게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이후 USB의 출처를 캐보니 이 공장의 노동자 A 씨가 다른 동료 노동자 B 씨로부터 USB에 영화와 노래 등을 복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복사해준 것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것으로 밝혀졌다.

B 씨가 받은 USB 안에는 중국 영화는 물론 한국 영화 등도 편집돼 담겨 있었는데, 그는 몇몇 친한 지인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자랑하듯 이야기해 주변에서 ‘나도 복사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B 씨는 또다시 A 씨에게 USB 복사를 부탁하면서 개당 얼마씩 돈을 줬고, B 씨는 그렇게 받은 USB를 또 주변인들에게 얼마씩 붙여서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USB를 복사해준 A 씨도 자신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결국 사건이 여러 갈래로 번져 이달 15일까지 주민 20여 명이 줄줄이 안전부에 연행됐다.

그로부터 며칠 뒤 속전속결로 붙잡힌 주민들의 죄과를 낱낱이 고발하는 사상투쟁회의가 구성공작기계공장 회관에서 진행됐다.

회의에서는 주민들의 행위가 폭로됐고, 이들은 ‘썩고 병든 자본주의 퇴폐문화를 유포한 자들’로 단죄돼 거센 비판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소식통은 “20여 명의 주민 중에는 군사 복무하다가 허리를 다쳐 하반신마비로 걷지 못하는 30대 초반의 영예군인(상이군인)도 있었는데, 그는 삼륜차에 태워져 연단에 올라 머리를 푹 수그린 채 비판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회관 밖에서는 연단에 세워진 주민들의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가족들은 이들이 앞으로 시 안전부에 구류돼 예심을 받게 되면 따뜻한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고생할 것이 걱정돼 도시락을 싸와서 대기 중이었다.

하지만 문제시된 20여 명의 주민들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수갑이 채워졌고, 가족들을 만날 새도 없이 차량에 실려 가 회관 밖은 가족들의 눈물로 울음바다가 됐다고 소식통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