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vs. 부채질…평양 간부와 지방 서민의 판이한 여름나기

[인터뷰] 폭염에 노인들 퍽퍽 쓰러져…제대로 된 치료보다 냉국, 소금물 섭취하라고만

북한 최대의 워터파크로 알려진 평양 문수물놀이장. /사진=노동신문·뉴스1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 북한 주민들은 어떤 방법으로 더위를 이겨내고 있을까?

최근 본보는 평양 중심구역에 거주하는 한 간부와 함경남도 해안 지역에 사는 2명의 서민과 인터뷰를 진행해 북한 주민들의 여름나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이에 따르면 평양의 간부층과 지방의 서민층은 더위를 피하는 방식에서 다소 차이를 보였다.

평양 간부들은 열악한 전기 사정에도 직장과 가정에서 냉방기기를 이용하기도 하고 시간을 내 멀리 피서를 떠나기도 하지만, 서민층은 부채질로 밤새 더위를 쫓아내는가 하면 어려운 사정에 제대로 된 피서를 하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무더운 날씨에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평양 간부(이하 A): 예년보다 무덥지만, 생활하는 데는 별 지장 없다.

함경남도 서민(이하 B): 너무 더워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로 덥다.

함경남도 서민(이하 C): 날씨가 너무 더워 움직이기만 해도 온몸이 땀이 범벅이 되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 수도라도 잘 나오면 찬물에 목욕이라도 할 텐데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

-더위를 어떻게 피하고 있나?

A: 더위를 피하는 게 따로 없다. 나의 경우 통근버스를 이용해 직장까지 출퇴근한다. 버스 안은 물론 사무실에도 랭풍기(에어컨)가 있어 시원하다. 집에도 랭풍기가 있다. 평양은 지하철도 시원해 일이 없는 사람들은 지하철에 가기도 하는데, 7·27(정전협정 체결일) 지나고 더 더워지면서 단속원과 규찰대가 역 안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단속하기도 했다.

B: 찬물에 발을 담그거나 얼음물을 사 먹어 속을 시원하게 한다. 바다에 가면 비린내 나고 파리가 너무 많아 보통은 나무 그늘이나 건물 그늘에 앉아 있다. 그래도 밤에는 바닷가가 시원하니 나가서 몸을 식히기도 한다.

C: 딱히 더위를 피할 방법은 없다. 선풍기가 있어도 전기가 오지 않아 사용하지도 못한다. 12V 선풍기(충전식 선풍기)도 방전이 빨리 돼 있으나 마나다. 돈이 없는 집은 참을 수밖에 없고 잘 사는 집들에서는 발동기(발전기)를 돌려 선풍기를 사용한다.

–에어컨을 사용하는 세대는 많은가?

A: 랭풍기가 있는 집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전기가 안 오면 말짱 도루묵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대체로 전기가 잘 들어와 랭풍기를 이용한다. 돈이 있는 가정 중에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세대별로 몇 집씩 묶어서 발동기를 갖다 놓고 랭풍기를 사용한다. 그렇게 해서 한창 더울 때 한 달이나 보름 정도를 넘긴다.

B: 랭풍기 돌리는 집은 전부 돈이 있거나 간부 집이다. 우리 같은 백성들은 밤새 부채질을 하는데, 죽을 때까지 이렇게 여름을 나야 한다. 수년 전에 구입한 선풍기도 겨우 돌리는데 더운 바람만 나온다. 여름과 겨울에 제일 불쌍한 것은 밖에서 사는 개랑 백성이다.

C: 랭풍기는 돈주나 간부집들에서 사용한다. 보통은 선풍기를 사용하는데 전기가 오지 않아서 무용지물이다.

2013년 8월 북한 양강도 혜산시 국경 지역 압록강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사진=데일리NK

–피서는 다녀왔나? 사람들이 주로 가는 피서지는 어디인가?

A: 다녀왔다. 피서지로는 원산이 인기가 높다. 그리고 마전, 칠보산, 묘향산, 룡문대굴, 정방산, 룡악산 순으로 인기가 많다. 보통 바닷가나 강가 또는 계곡을 찾는다. 피서 일정은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일주일 다녀온다. 가족과 가기도 하고 부서별로 가기도 한다. 피서를 가면 해수욕, 모래찜질, 얼음 맥주나 음료수 마시기 등을 즐긴다. 평양에 야간 물놀이장이 개장하면 그곳에 가기도 한다.

B: 돈 있고 먹을 것이 있어야 피서를 갈 수 있다. 우리 같은 백성들은 피서를 생각도 못 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다. 간부들이나 돈데꼬, 담배 장사 왕초들 같은 돈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 들어보니 함경남도 사람이면 아는 사람들과 집에서 먹을 것을 싸 들고 함경남도 내 가까운 바닷가들에 가서 더위 식히고 해수욕하고 시원한 술 한잔 마시며 잘 놀고 온다고 한다. 며칠씩 가는 휴가는 간부들이나 하는 소리다.

C: 피서는 평양에 사는 사람이나 생각하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오직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한 걱정뿐이다. 더위를 피해 어디로 갈 생각을 할 시간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다. 요새는 밥술만 떠도 보위원들이나 안전원들이 정보원들을 시켜 어떤 벌이를 해 돈을 버는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해 놀러 가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예전에는 바닷가에 가서 수영을 하거나 사진도 찍고 준비해 간 음식을 먹으며 놀다가 돌아왔다.

–폭염에 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 온열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가? 그런 이들에 대한 치료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A: 날이 더워 쓰러지는 사람이 많이 있고 특히 노인들이 퍽퍽 쓰러졌다. 그렇다고 병원 가는 사람은 지금껏 보지 못했다. 염기(소금기) 들어간 냉국을 많이 먹으라고만 하지 치료를 해주는 일은 없다. 구급차는 부르면 2시간 되도 오지 않는다. 여기(북한)은 그런 체계가 없다. 일사병 같은 이런 더위 질환이 발생하면 전화로 문진 처방하는 게 끝이다.

B: 노인들이 많이 쓰러졌다. 치료는커녕 오이냉국 많이 먹고 소금물로 수분과 염기를 충분히 보충하라고 하는 정도다. 그래서 돗자리 펴고 할 일 없이 마당 앞에들 모여 말새질(수다)하러 나온 노인들에게 (인민)반장이 집으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정작 노인들은 집이 더 덥다면서 들어가려 하지를 않는다.

C: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여자들이 폭염에도 나다니면서 더위를 먹고 길가에 쓰러지는 일들이 하루에 한두 번씩은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치료를 받지는 않는다. 보통 찬물에 씻고 만약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수건에 찬물을 적셔 몸을 닦아 준다.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돈이 있어야 하는데 형편이 안 돼 병원에 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