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한 삼성 TV’ 찾아라…전쟁 비상 소집 보다 더 빨라

[북한비화] 코로나 시기 中-北 오가는 택배 전쟁...대사관·브로커 합동 돈벌이

신의주 강변에 쌓여있는 석탄과 운반선 모습.(기사와 무관) / 사진=데일리NK

2020년 11월 어느 날, 북한 대안항으로 선박 한 척이 뱃고동 소리를 길게 울리며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육·해·공 국경을 단단히 틀어막은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북한 최대 항구인 남포항 조차 운항을 멈추고 정박해 있는 선박이 많은 때여서 대안항으로 들어오는 이 배가 특수한 상황의 임무를 맡았을 것이라는 점만 짐작됐다. 북한의 주요 석탄·광물 수출항구에 왜 일반 선박이 입항한단 말인가.

데일리NK 취재를 종합해보면, 여기엔 북한 고위 간부들이 중국 쪽으로 주문한 각종 물품이 실려 있었다. 봉쇄에도 먹고 살아야 했던 이들은 원래 알고 있던 선(線)을 이용해 해외에서 상품을 들여오기 위한 계획을 꾸몄던 것이다.

여기에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이 적극 호응했다. 내부 간부들의 부탁을 받으면 대사관 직원들을 중심으로 물품을 확보했고, 선장에게 넘겨주는 식의 작업이 은밀이 진행됐던 것이다. 이들이 모두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대사관 측은 대외 무역 ‘제로’라는 이 기회를 ‘외화를 싹쓸이 할 수 있는’ 호재로 판단했다. 심지어 ‘조국에서 나오는 배에 짐을 이관시켜 가족에게 무사히 인계하고 확인 전화를 하게 해준다’고 하면서 해외 파견 다른 사람들의 부탁도 들어주기에 이른다. 이른바 광고 효과를 노린 셈이다.

실제 중국 내 일반 노동자들은 이 루트를 활용해서 돈이나 편지를 내부로 전달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북한 대사관 측 입장에서는 소중한 고객들이 지속 늘었던 것이다.

적극적인 사업 구상(?)으로 북한 시장처럼 ‘무슨 물건이든 다 거래되는’ 지경에 도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게 됐다고 한다. 특히 평소에 들여가기 힘들었던 한국 전자제품, 화장품도 주중 북한 대사관 직원 브로커는 ‘돈만 주면 OK’라고 장담했다.

실제 삼성 TV 등 전자제품은 물론 신발, 옷가지 등 남조선 공업품도 거래 품목에 들어갔고,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말 제정)에 따라 엄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영화가 담긴 메모리(USB, SD카드)도 무사통과였다. 돈만 주면 말이다.

여기서 대사관 짐 이관 브로커는 작은 배낭은 100달러 받았고, 삼성 TV 하나는 400달러 정도로 가격을 매겼다. 나름의 위험수당을 계산해서 책정된 시장가격이었다.

당시 대안항으로 들어오는 선박에도 이렇게 부탁받은 여러 물건이 실려있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문제였다. 코로나 방역으로 국내 이동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평양시내를 달리고 있는 써비차. (기사와 무관)/사진=데일리NK

하지만 어느새 각 지역에서 이미 콘테이너 차량과 써비차(물건이나 사람을 날라주는 차량)가 항구에 도착해 있었다. 차량의 운전수들은 이미 선장이 포섭해 놓은 또 다른 ‘브로커’들이었다.

당연히 간부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평양시, 평성시(평안남도), 남포시, 신의주시(평안북도) 쪽으로 이동할 물건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의 택배 서비스처럼 집 앞까지 모두 다 무사히 배달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당연히 ‘돈의 힘’이 작용했다.

‘사람이 모이는데 전쟁 준비 비상 소집보다 더 빨리 모였다’는 말들이 현장에서 나올 정도로 이들의 움직임은 민첩했다는 후문이다.

당국이 ‘국가 방역’과 ‘특수 근절’을 외치고 있는 와중에도 북한 내외부에서는 이 같은 특수 작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