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은 지금] 男간부 앞 티 한장 입고 얼차려 받는 여군들

[인권기획③] 성폭력 정확히 인지 못해…배경 없는 여군들은 남성들 농락 대상 되기 쉬워

[편집자주]
북한의 인권 문제를 조사하는 공식 국제기구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설립된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습니다. COI는 지난 2014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에서는 아직까지도 뿌리 깊은 가부장제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지속되고 있다’며 성차별에 기초한 여성 인권 침해 사례에 집중했는데요. 그로부터 10년가량이 흐른 지금, 북한 여성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데일리NK는 현재 북한 각 분야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차별과 폭력 사례들을 통해 북한 여성들의 인권 실태를 진단해보려 합니다.
2017년 4월 13일 평양 려명거리 준공식에 참석한 북한의 여군들의 모습. /사진=연합

지난 1월 북한 군관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토요학습 자료에 남성 군인들이 여군을 윤간(輪姦)한 사건이 기재됐다. 내용이 너무 잔악해 자료를 통해 사건을 알게 된 군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자료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해 말 육군 대대 내 남성 중대와 여성 중대가 함께 있는 한 ‘혼성구분대’에서 벌어졌다. 남성 군관 이모 씨가 갓 입대한 18세 여성 최모 씨를 부대 내 사무 공간에서 성폭행한 것.

이후 피의자 이 씨는 현장을 떠났으나 피해자 최 씨는 현장을 지나던 다른 남성 하전사들에 의해 세 차례에 걸쳐 윤간을 당했다.

결국 최 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군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부대원 전체가 해당 사건을 알게 됐고, 이 사건은 총참모부에까지 보고돼 군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상 교육 자료에 담겨 배포됐다는 전언이다.

군에 정통한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은 “총정치국 학습 자료에 나올 만큼 심각한 사건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여성 군인들의 30%가 강간당했고 95% 이상이 농락당했다고 할 정도로 여성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한 부대에서는 남성 군관들이 여성 중대원들에게 면 티셔츠 한 장만 입게 한 뒤 연병장을 달리게 하고 그 모습을 보며 희롱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여군들은 직접적으로 폭행당하거나 상해를 입은 게 아니어서 신고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 북한 주민들은 성폭력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보가 북한 여성 군인들의 인권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성폭행’, ‘성추행’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해 ‘강간’이나 ‘농락’ 등의 단어로 바꿔가며 재차 설명해야 했다.

북한에서는 여성들도 고급중학교(우리의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7세가 되면 군입대 대상자로 분류된다.

이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딸을 군에 보내지 않기 위해 혹는 복무 환경이 비교적 나은 곳으로 배치되도록 뇌물을 쓰는 경우가 다반사다. 반면 형편이 좋지 않은 가정의 여성들은 입당을 통한 사회적 지위 상승을 목적으로 입대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가정환경이 여군들의 군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부모가 없거나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여성들은 군에서도 남성 군인들의 농락 대상이 되기 쉽다는 설명이다.

소식통은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간부 집 딸들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사단이 꾸려지고 처벌을 강하게 받게 되기 때문에 쉽게 건드리지 못하지만 어려운 집 자식들은 지켜줄 부모가 없으니 누구든 쉽게 보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북한군 내에서 여성 군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개인의 배경과 부모의 권력밖에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나마 사건의 내용이 심각하고 사안이 소문을 통해 알려지면 가해자 처벌이 이뤄지고, 주의를 시키려는 목적에서 총참모부가 문제시된 사건의 내용을 사상 학습 자료에 담아 간부들에게 배포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일시적인 조치에 그치고 있다.

이승주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프로파일러(정치학 박사)는 “북한군 내에서 여성 군인들에 대한 인권 유린 사건이 만연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지하거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상부에 신고를 할 수도 있지만 여성의 신상이 알려지고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피해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신고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