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주민 인터뷰] 상인들 “장마당 시간 늘려주길” 한목소리

[설 기획-北 주민에 새해 소망을 묻다②] 코로나 이후 벌이 확 줄어…배고픔 해결 소원

[편집자 주]
미증유의 코로나 위기는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국경봉쇄로 무역이 중단되고 장마당이 위축되면서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주민들의 호소가 잇따랐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렇게 모든 것이 부족한 때에도 농업 생산량 증대, 국방력 강화를 외치며 성과를 압박했습니다. 코로나가 삼켜버린 지난 3년을 악착같이 버텨온 북한 주민들. 본격적인 ‘엔데믹’(endemic)을 맞은 지금 그들이 가장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데일리NK는 설을 맞아 각 분야 다양한 직업군의 북한 주민 인터뷰를 연재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합니다.
2018년 11월에 촬영된 라진시장 건물. /사진=데일리NK

북한은 코로나19 발생 후 방역을 빌미로 장마당 통제를 강화하고 장마당 운영 시간마저 축소했다. 실제 코로나 이전 8~9시간이었던 장마당 운영 시간은 3~5시간으로 축소돼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의 아우성은 극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은 길거리 장사에 대한 단속까지 강화해 곳곳에서는 길거리 장사꾼들과 단속원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길거리 장사꾼들은 단속되면 물품이 모두 몰수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과 가족들의 끼니를 어떻게든 해결해보고자 길거리로 나오고 있다.

이렇듯 장마당에서도, 길거리에서도 경제활동이 어려워진 주민들의 생계 고민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통제와 단속에 벌이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주민들의 불안감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 봉쇄 4년 차가 된 올해 상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데일리NK는 평양에서 장사 활동을 하는 주민 2명과 혜산 장마당 장사꾼 1명에게서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과 현실적인 고민,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다음은 평양/혜산 상인들과의 일문일답

–코로나 발생 이전과 비교해 현재 형편이 어떤가.

평양 장마당 신발 장사꾼 이모 씨(이하 이): 코로나 발생 후 형언할 수 없는 심각한 생활난을 겪고 있다. 코로나 전에는 신의주와 혜산에서 들어오는 중국산 구두를 받아 판매하며 번 돈으로 온 가족이 먹고살면서도 밑돈을 늘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형편이 안 된다. 중국산 제품은 평양시 시장들에서 말라버린 지 오래고 국산 제품이 조금씩 나오긴 하나 가격이 높아 넘겨받지를 못하는 상황이다. 장마당에 매일 출근해도 잘 벌어야 쌀 1kg 가격 정도인데 80~90딸라(달러)의 신발을 누가 어떻게 사 신겠는가? 정말이지 요즘은 돈 만져보기가 어렵다. 저녁에 장마당에서 들어올 때는 내일은 어떻게 먹고 살지 하는 걱정에 눈물이 다 난다. 나뿐만 아니고 내 주변의 장사꾼들이 다 같다.

평양 길거리 식량 장사꾼 정모 씨(이하 정): 코로나 전에는 그래도 아파트 골목들에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팔아 살았다. 코로나 전에는 단속하긴 했지만 그렇게까진 심하진 않았는데 코로나 발생 후부터는 단속이 심해 엄두도 못 낸다. 이제와서 장마당에 앉으려고 해도 수천딸라나 하는 매대를 사기도 어렵고, 벌이가 되지 않아 속상해하는 장사꾼들을 보면서 매대를 샀다가 더 안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배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게 너무 답답하고 힘들다. 지방에서는 평양 사람들이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사는 줄 알 텐데 그렇지 않다. 새해에는 좀 나아질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전원회의 내용을 보고 그 기대마저 접었다. 올해를 또 어떻게 살아낼까 하는 걱정에 잠들 수가 없다.

혜산 장마당 쌀 장사꾼 김모 씨(이하 김): 정말 숨이 안 나온다. 쌀 사러 오는 사람 중에 돈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얼마나 벌이가 안 되면 몇백 g씩 사 가는 사람들도 있다. 쌀을 팔아도 돈이 잘 들어오지 않는 데다 벌이까지 안 되니 쌀밥을 먹어 본 지도 1년이 넘은 것 같다. 배고픔을 참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는 여러 해를 넘기다 보니 길가에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냥 뼈에 가죽을 씌워놓은 것 같다.

–지금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가.

: 하나부터 열까지가 다 고민이다. 아이들은 커가고 대학에도 보내야 하는데 이제는 장사 밑천으로 굴리던 돈도 다 까먹은 상태다. 올해도 국경이 열리지 않고 벌이가 안 되면 어떻게 가정을 먹여 살려야 할지가 제일 걱정이다. 배급이라도 정상적으로 주면 일없겠는데(괜찮겠는데) 이따금 가다가 한 번씩 주니 믿을 것도 못 되고 한숨밖에 안 나온다.

: 자식이 두 명인데 그동안에는 남편 덕에 배급도 타고 자식들 뒷바라지도 했다. 2년 전에 남편이 떠난 후로는 먹는 건 둘째치고 자식들 학교에서 내라는 돈을 보장해 주지 못해 자식들 얼굴 보기도 힘들다. 지금은 부모 구실도 돈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 국경이 열리지 않고 다른 대책이 없이 이렇게 살다가는 살아남을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어른들도 배고프면 참기 힘든데 아이들은 더 말해서 뭐 하겠는가? 정말 자식들한테 죄인 된 심정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애들이 너무 빨리 철이 드는 것 같다. 배고파도 배고프다는 말을 안 하니 부모된 입장에서 가슴이 더 아프고 눈물밖에 나지 않는다. 그런데다 장마당도 2~3시간밖에 운영하지 않아 연초부터 어떻게 벌어야 먹고 살겠는지 걱정만 앞선다.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는데, 올해 특히나 바라는 바가 있다면.

: 새해에는 국경이 열려서 모든 것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특히 장마당 시간을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체로 돈을 벌어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도 받지 않고 웃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 텔레비죤(TV)에서 소개하는 것과는 달리 평양에 식량난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살아갈 수 있게 장마당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 부모들이 부모 구실 하게 해줬으면 바라는 게 없겠다.

: 올해는 말로만 열린다고 하던 세관이 진짜로 열리고 장마당 운영 시간도 좀 늘려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올해는 식구들이 배고픔을 모르고 사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