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달력 분석] 푸틴 선물 ‘장검’은 넣고 시진핑 선물은 없었다

對中 외교 중시 전략에 비춰 이례적 결정...소식통 "외교적 결례 가능성에 조심한 듯"
김일성·김정일은 물론 김정은 선물도 삽입..."세 분 수령 세계인민 흠모 마음 담아"

외국문출판사는 2023달력에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가 해외 정상이나 귀빈 또는 친북단체로부터 받은 선물 사진을 담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선물한 장검 사진도 달력에 포함됐다. /사진=데일리NK

북한 당국이 2023년 달력에 북한 최고지도자가 외국 정상이나 당국자 또는 해외 친북단체로부터 받은 선물 사진을 담았다. 그러나 시진핑(習斤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받은 선물은 달력에 넣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데일리NK가 입수한 북한 외국문출판사의 2023년 달력에는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가 해외 정상이나 개인, 단체로부터 받은 선물의 사진과 간략한 설명이 담겼다.

일단 1월 면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9년 4월 러시아에 방문했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장검과 상봉 기념 금메달, 그리고 찻잔 세트 사진이 담겼다.

사진 밑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 로씨야(러시아) 련방 대통령 울라지미르(블라디미르) 울라지미로비치(블라디미로비치) 뿌찐(푸틴)이 드림’이라는 한글과 함께 중국어 번역도 달렸다.

외국문출판사는 달력을 출판할 때 한글과 함께 영어나 혹은 중국어 번역을 병기해 외무성 또는 해외 공관 등에 배포한다.

본지가 입수한 해당 달력은 중국어 번역이 병기돼 있는 것으로 볼 때 북한 주재 중국 대사관이나 중국 공관 및 현지 파견 기관 등에 배포할 목적으로 인쇄된 것으로 보인다.

2월 면에는 김정일이 2007년 역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은꽃병 사진이 인쇄됐다.

3월에는 김일성이 1988년 ‘도이췰란드민주주의공화국(동독) 민족보위상’으로부터 받은 독수리 도자공예 사진이, 4월에는 김일성이 ‘체스꼬슬로벤스꼬(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밀로슈 야께슈’로부터 받은 자기컵과 자기주전자 사진이, 5월에는 김정일이 ‘나이제리아(나이지리아)련방공화국 국회 상원의원’에게 받은 진주보석장식 자기꽃병의 사진이 담겼다.

김일성 시대부터 북한과 외교적 친선관계를 이어온 나라 중에서 국가 수반이나 그에 준하는 당국자로부터 받은 선물을 1월부터 우선 배치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중국어로 번역된 달력에 시진핑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선물한 사진이 담기지 않아 그 이유에 관심이 모아진다.

김 위원장은 2018년 부인 리설주와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을 당시 시 주석으로부터 3m 높이의 경태람(景泰藍) 화병과 고급 식기세트, 백자 다기세트, 고급 중국 술인 마오타이(茅台) 등을 선물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시 주석은 2019년 6월 방북했을 때 김 위원장의 반신동상을 선물하기도 했다. 조선중앙TV는 한해 뒤인 2020년 국제친선전람관에 전시된 이 반신 동상을 소개하며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에게 특별 과업을 주어 마련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어 번역 달력에 시진핑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선물한 사진이 누락된 것은 북한 당국의 정치외교적 의도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 내부 외교 소식통은 “우리 국가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중국의 외교 관계가 중요하다”며 “수령님(김일성), 장군님(김정일), 원수님(김 위원장) 세분의 탄생과 혁명력에서 정주년을 맺음하고 한걸음 나아가는 2023년에 대외적으로 세분의 위대한 수령에 대한 세계 인민들의 흠모의 마음을 (달력에) 담은 것이기 때문에 혹여나 외교적 결례가 되지 않도록 습근평 동지 선물은 넣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외국문출판사가 제작한 해당 달력에는 이 밖에도 중국 진항청년국제교류촉진회, 싱가포르무역개발이사회대표단, 이탈리아국제그룹 이사장 등 친북단체나 친북인사가 김 씨 부자에게 전달한 선물 사진이 담겼다.

한편 김정은 위원장이 받은 선물까지 달력에 삽입한 것도 이례적인 사항으로 분석된다. 집권 10년차를 마무리 한 김 위원장이 선대(先代) 수준의 정치적 위상을 확보하겠다는 신호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김일성·김정일 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의 생일도 은연중에 부각하는 장치도 마련한 부분도 주목된다. 김일성·김정일, 김 위원장 생일이 있는 4월(15일)과 2월(16일), 그리고 1월(8일)엔 각각 김일성과 김정일, 김 위원장이 받은 선물을 삽입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생일을 염두에 둔 우상화 선전이 조금씩 본격화될 가능성이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