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부족 심각하다 판단한 北…해외파견원에 “곡물 확보하라”

외교관·무역대표부·특수업무 수행 요원 등에 곡물 조달 명령…보안에 각별히 신경쓰기도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 압록강변에 북한 선박이 정박해 있는 모습. /사진=데일리NK

북한이 최근 식량 부족량을 추산한 결과 1년치 식량 필요분 중 5개월치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보다 심각한 식량 상황에 북한은 해외에 파견된 주재원들에게 곡물 조달 명령을 내렸다는 전언이다.

2일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달 초 해외 각지에 파견돼 있는 주재원들에게 하반기 당에 바쳐야 하는 계획분을 입쌀, 강냉이(옥수수), 콩 등 현물로 제출하라는 내용의 지시문을 하달했다.

해당 지시는 외무성, 대외경제성, 군수공업부, 중앙당 등 상부 기관이 여러 나라에 파견된 외교관, 무역대표부, 특수품 밀수업자 등 소속원들에게 각각 하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위조 여권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특수 목적의 기밀품을 밀수하는 요원들에게까지 쌀을 조달하라는 지시를 내려 요원들 사이에서 “고난의 행군 이후 조국이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한 것이 아닌가”라는 한탄도 나왔다는 전언이다.

북한은 지시문을 통해 ‘올 상반기 농촌 총동원 기간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유동(이동)이 제한되면서 농업 생산량에 타격을 받게 됐다’는 식의 설명을 덧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파견원들에게 ‘1t도 좋고 2t도 괜찮으니 최대한 곡물을 확보하고, 조달한 현물만큼 하반기 당 자금 계획분에서 제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고 한다.

국가계획위원회와 내각 농업위원회는 통상 추수 후 곡물 생산량의 윤곽이 드러나는 10월 말경에 식량 부족분을 추산하지만 올해는 밀, 보리 생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이모작이 끝나는 7월 말경 부족분을 추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예상보다 식량 부족이 심각할 것으로 보여 당과 내각이 대책 회의에 나섰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회의에서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수입을 요청하는 방안도 제기됐지만, 국가가 직접 식량을 요청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개별 주재원이나 단체가 자체적으로 식량을 조달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특히 북한 당국은 해외파견원들에게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주의를 준 것으로도 파악됐다. 또 이번 사업은 국가가 주도하는 공식적 식량 요청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국가가 식량 부족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곡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대내외적으로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식량 조달 지시는 물론 그 과정도 눈에 띄지 않게 기밀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나라가 다른 나라에 식량을 구걸한다는 것을 북한 스스로 망신스럽게 여기고 있고, 이 사실이 내부 주민들에게 알려지면 당과 국가에 대한 신뢰도 하락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물밑에서 움직이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인도 국제사업회의소(ICIB) 홈페이지에 “북한의 관료들이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곡물 지원을 논의하기 위해 인도 뉴델리의 ICIB 사무실을 방문했다”는 내용과 북한인으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사진이 공개됐는데, 이를 두고 한 소식통은 “저렇게 식량을 요청한 사실이 공개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6월 23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전원회의 결정 관철에 떨쳐나선 각지 농업 부문 일꾼들과 근로자들이 앞그루 밀, 보리 가을을 힘있게 다그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특히 북한은 해외파견원들이 한국인이나 미국인과 직접 소통하지 말 것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3국 국적자나 단체를 통해 한국산, 미국산 곡물을 받을 수는 있지만, 직접 거래는 안 되며 해당 곡물이 한국이나 미국에서 온 것을 식별할 수 있는 표시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 북한의 지침이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식량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이 주민들에 알려져 정치사상적 파장이 이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해외파견원들이 조달한 곡물이 남포항, 송림항뿐만 아니라 동해안에 있는 함경남도 흥남항을 통해 반입되고 있다는 전언도 나왔다.

또 다른 소식통은 “중국에서 가장 많이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나 해외에 나가 있는 파견자 모두에게 낟알 과제가 내려간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나라에서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최근 러시아로부터 밀을 수입했으나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국산 밀과 섞고 밀가루로 분쇄해 공급한 것으로 전해졌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北, 러시아서 밀 들여와…’친선’ 강조한 대가로 지원 받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