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곡물 가격이 연일 고공행진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극심한 식량난이 우려되지만 북한 당국은 시장 곡물 가격 폭등에 손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데일리NK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북한 시장 물가 조사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북한 시장에서 쌀 1kg은 평양 6280원, 신의주 6300원, 혜산 6800원에 거래됐다.
양강도 혜산시의 경우에는 이미 이달 10일 쌀 가격이 6000원을 넘어섰고, 최근에는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서도 쌀 가격이 모두 6000원대를 돌파했다.
코로나로 인한 지역 봉쇄로 유통이 마비되면서 봉쇄 지역의 시장 쌀값이 일시적으로 폭등하는 현상이 나타난 바 있으나 주요 도시들에서 모두 쌀 가격이 1kg에 6000원대를 넘어선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 2017년 9월에는 공급량 부족으로 평양의 비롯한 주요 도시 쌀 가격이 일시적으로 1kg에 6000원을 넘어선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 저소득층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옥수수(강냉이) 가격도 빠르게 치솟고 있다. 26일 북한 시장의 옥수수 가격은 1kg에 평양 3110원, 신의주 3130원, 혜산 3400원으로 조사됐다.
2020년 1월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 이전만 해도 옥수수 가격은 쌀 가격의 1/4 수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북한 주민들이 증가하고 이들이 쌀 대신 옥수수를 찾으면서 옥수수값은 쌀값보다 가파르게 상승해 현재는 쌀 가격의 1/2 수준이 됐다.
지방에서는 강냉이죽으로도 끼니를 때우기 힘든 ‘절량세대’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 당국은 별다른 대책이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과거 북한은 시장에서 쌀값이 폭등하면 가격 상한선을 제시하고 상인들이 그보다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지 못하게 단속하는 등 가격 통제를 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北, 강력한 쌀값 통제 나서… “가격 올리면 장사 못하게 할 것”)
하지만 국가식량판매소 설치 이후 북한 당국이 시장 곡물 가격을 직접 통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경제 부문의 북한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치솟고 있는 현 상황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국가식량판매소의 신뢰도를 높일 기회로 여기고 있다.
아직 국가의 쌀 수급량이 충분치 않아 국가식량판매소에서 쌀이나 강냉이 같은 곡물을 상시 판매하지 못하고 있지만, 시장가격이 높을수록 비교적 값이 저렴한 국가식량판매소를 찾는 주민이 많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보다 국가 주도의 식량 판매를 선호하는 주민이 많을수록 국가의 곡물 수급 및 가격 조정 능력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 당국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국가식량판매소를 통해 곡물이나 채소(남새)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달에도 평양의 국가식량판매소에서 강냉이 1kg에 2000원, 오이·가지·근대 등 채소류를 100~200원가량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내부 소식통은 “최근 중국에서 밀가루와 쌀 등이 들어오고 있다”며 “국가가 낟알을 판매하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이 식량 수입을 통해 국가식량판매소 곡물 수급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최지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가가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곡물을 판매한다면 일시적으로라도 가격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런 효과가 지속되느냐는 당국의 의지나 조치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