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방 기업소들에 ‘5만원권 돈표’ 사용 지시…이유가?

행표 오남용으로 인한 자원 낭비, 부정부패 방지 의도…일선 현장에서는 부정적 반응 나와

북한 평안북도 삭주군 청성노동자구의 한 공장. /사진=데일리NK

북한 당국이 기업거래용으로 사용되는 5만원권 돈표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행표 사용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기관용 돈표를 발행한 것이라는 전언이다.

3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최근 4급 이하의 지방 기업소에 새로 발급된 5만원권 돈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북한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자재나 제품을 구매할 때 담보 한도 내에서 현금 없이 서류로만 돈을 주고받는 무현금행표를 사용한다. 무현금행표는 은행의 지급보증을 받은 증서로, 일종의 보증 수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기업들이 거래에서 행표를 오남용하고, 이로 인해 자원이 낭비될 뿐만 아니라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하는 부정부패가 만연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A 기업이 1t에 95달러인 철강이 7t 필요한 경우 총 자재 가격인 665달러만큼의 행표를 발급받는 것이 아니라 700달러 가치의 행표를 발급받고 35달러는 기관 또는 간부가 유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북한은 기업들이 현금이 아닌 행표를 이용해 필요 이상의 자재를 구매해 낭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기업거래용 단위로는 다소 작은 단위라고 할 수 있는 5만원권 돈표를 발행했고, 지방 기업소를 대상으로 행표 대신 이를 사용할 것을 권장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5만원권 돈표를 기업거래에 이용하도록 함으로써 명확한 거래 기록을 남기고 거래에서 발생하는 자원 및 재화 남용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주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외화 및 내화를 흡수해 국가 재정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발행한 5000원권 돈표와는 그 목적이 상이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2021년 발행한 5000원권 돈표 앞면. /사진=데일리NK

본보는 지난해 11월 북한이 중앙당 간부와 조선중앙은행 소속 직원, 국영상점 간부 등을 모아놓고 돈표에 대한 강연회를 진행하면서 ‘돈표는 곧 수표와 같다’고 설명했다고 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북한 “돈표, 수표처럼 사용토록 발행”…간부들도 “그게 뭔데?”)

북한 당국은 지난해 연말부터 행표를 대신할 거래 수단으로 돈표의 사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업거래에서는 행표 사용이 일반화돼 있기에 당장 행표 발행을 중단하기보다는 행표와 돈표를 병행해서 사용하되 되도록 돈표를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3급 이상 대형 기관기업소의 경우 기존 방식대로 행표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 행표의 사용처나 규모 등을 올해 안에 개편하겠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지방 기업소들은 ‘행표 대신 5만원권 돈표를 사용하라’는 당국의 지시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결제 방식이 하나 더 생겼다는 등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특히 국가가 기업거래를 세분화해서 일일이 들여다보는 것은 기업 증산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당국이 강조하는 증산을 위해서는 예비 자재도 비축해 둘 필요가 있는데, 명확히 필요한 양만 구비할 경우 자원을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돌발상황에 즉각 대처하지 못해 생산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일선 현장의 우려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임송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북한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알려진 돈표의 성격은 무현금행표와 현금의 성격이 혼재돼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다만 새로 발행된 5만원권의 경우 행표의 기능이 더 강하게 내포돼 있다면 또 다른 양상으로 북한 국가경제, 시장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