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黨 간부들, 김정은 친서 ‘평가했다’ 표현 두고 南 비웃어

남북 정상 친서 교환 사실 노동신문에 공개 안한 것은 불필요한 소문 차단하려는 의도인 듯

문재인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9일 밤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을 앞두고 최근 남북 정상 간 친서가 오간 가운데, 북한의 당 간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열위에 두는 표현을 썼음에도 남측에서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며 조소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중앙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대내 간부 신문을 통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친서 교환 소식을 접한 간부들은 “‘평가한다’는 말은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쓰는 표현인데 남측이 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원수님(김 위원장)이 답신을 보내준 것만 감사하고 있다”며 비웃음 섞인 반응을 보였다.

우위에 있는 존재가 하위에 있는 대상을 ‘평가’할 순 있지만, 하급자는 동등하거나 상위에 있는 대상에게 ‘평가’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남북 정상의 친서 교환에 관한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은 임기 마지막까지 민족의 대의를 위해 마음 써온 문 대통령의 고뇌와 수고, 열정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경의를 표하며 문 대통령을 잊지 않고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존경할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조선중앙통신도 “김정은 동지께서는 북남수뇌(남북 정상)들이 역사적인 공동 선언들을 발표하고 온 민족에게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안겨준 데 대해 회억하시면서 임기 마지막까지 민족의 대의를 위해 마음 써온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와 노고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셨다”고 언급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보낸 답신 전문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높이 평가했다’는 표현은 분명히 적시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박 대변인이 김 위원장의 친서에 담겨 있었다고 전한 ‘경의를 표한다’, ‘문 대통령을 변함없이 존경할 것’이라는 표현은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간부 신문에도 담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간부들은 이번 김 위원장의 친서 내용 중 ‘이정표가 될 선언과 합의가 이뤄졌다’는 표현과 관련해 “이정표는 우리(북측)가 세우는 것이며 남측은 이에 동의하고 따라올 뿐”이라며 남측을 낮잡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북남수뇌 분들의 친서 교환은 깊은 신뢰감의 표시”라고 의미를 부여했으나 정작 내부에선 친서를 두고 남측에 대한 비방이 이어진 셈이다.

이런 가운데 당 간부들의 이 같은 대남 비방 분위기를 통일전선부가 기획·조성하고 있다는 전언도 나왔다.

김 위원장의 답신 전문 중 조선중앙통신과 간부 신문에 게재할 내용만 선별한 후 공개본으로 편집한 주체가 통전부이기 때문에 간부들이 남측을 비웃는 상황을 자신들의 성과로 인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북한이 남북 정상 간 친서 교환 사실을 일반 주민이 볼 수 있는 노동신문 등에 공개하지 않은 것은 불필요한 소문이 양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난 2018년 문 대통령의 방북 때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한 내용이 주민들에게 공개된 후 주민들 사이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여러 소문이 확산된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 환영 사업에 동원됐던 평양시 보통강구역 경흥동의 40대 남성은 ‘남조선(한국) 대통령은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우리한테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을 보며 인간됨(인간성)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원수님과 너무 대조적이다’라고 말한 것이 중앙에 보고돼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北 주민들, 여전히 文대통령 긍정적으로 인식…당국은 골머리”)

소식통은 “일반 백성들은 모든 정치적인 내용을 경제적 대가와 연결 짓는다”며 “굳이 친서 교환 사실을 공개해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평가나 소문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