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 낮춰 담화 다시 낸 김여정…악화된 내부 민심 의식했나

전문가 “북한의 지속적인 대결 구도 조성이 주민들에게는 피로감으로 느껴졌을 수도”

지난 2019년 3월 2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할 때 모습. /사진=연합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이틀 만에 또다시 담화를 내고 서욱 국방부 장관의 ‘선제타격’ 발언을 비판했다. 다만 북한은 앞선 담화에 비해 대남 비난의 수위를 낮췄는데, 이를 두고서는 동요하는 민심을 다독이려는 의도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5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지난 3일 김여정의 담화가 나온 이후 적지 않은 주민들이 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김여정은 당시 담화에서 서 장관의 선제타격 발언을 거론하며 “남조선 군부가 우리에 대한 심각한 수준의 도발적인 자극과 대결 의지를 드러낸 이상 나도 위임에 따라 엄중히 경고하겠다”며 “참변을 피하려거든 자숙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미친놈’, ‘쓰레기’, ‘대결광’ 등의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특히 북한은 이 같은 내용의 담화를 이례적으로 주민들이 볼 수 있는 노동신문에 게재했다. 남북 대결 분위기를 강화함으로써 체제 결속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작 북한 주민들은 “차라리 전쟁이 나서 다 갈아엎었으면 좋겠다”, “전쟁 나서 죽나 굶어 죽나 같은 것 아니냐”, “전쟁이 나면 우리 당비서부터 쏴 버리고 싶다” 등의 반응을 보이면서 오히려 불만을 드러냈다는 전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국경봉쇄와 대북제재 장기화 등 경제 악화가 지속되는 상황에 한반도 정세까지 긴장되자 주민 불만의 화살이 당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담화 이후 내부의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자 북한은 같은 주제의 대남 비난 담화를 다시금 발표하면서 보다 정제되고 차분한 표현을 쓴 것이라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실제로 김여정은 5일 추가로 낸 담화에서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총포탄 한 발도 쏘지 않을 것”이라며 “이것은 순수 핵보유국과의 군사력 대비로 보는 견해가 아니라,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할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코로나 봉쇄 장기화로 인한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상당히 누적돼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지속적인 대결 구도 조성이 주민들에게는 피로감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내부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이를 이용해 결속을 꾀하려 했으나 이미 내적으로는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상당히 고조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한편, 북한이 새로운 계기가 없음에도 같은 사안을 두고 재차 대남 비난 담화를 발표한 것은 도발을 이어가기 위한 명분 쌓기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여정이 이번 담화에서 “우리는 전쟁을 반대한다”는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했는데, 이러한 반전(反戰) 입장도 추후 군사 도발의 책임을 외부에 돌리기 위한 수순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무기 개발이 ‘자위권 차원’임을 강변하면서 한국과 미국 등을 겨냥한 것이 아닌 ‘전쟁 자체가 주적’이라고 주장한다”며 “이러한 입장은 향후 북한의 도발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