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장의 이슬로 사라질뻔한 인민군 상좌, 그에게 무슨 일이?

[북한 비화] 김정은, ‘인간애’로 軍 장악하며 김정일 후계자 입지 강화

청년대장 김정은. /사진=북한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 조선의 어머니’ 캡처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북한 후계 구도에 여러 관측이 제기되던 2008년 1월, 평양에서는 내부적인 조치가 비밀스럽게 취해지고 있었다. 당시 김정일은 둘째 아들 김정은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하고 이를 전당, 전군, 전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2007년 4월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김정은은 이듬해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고 인민무력성(당시 인민무력부) 제6호동 청사에서 후계자로서의 첫 사업을 시작했다. 아버지 김정일의 ‘선군정치’로 비대해진 군을 장악하는 것이 당시 김정은으로서는 가장 큰 과제였다. 김정은을 주체혁명 위업의 유일한 후계자로 받들겠다는 군의 지지와 호응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김정은에게 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과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한다는 2010년 9월 28일 당대표자대회 결과 발표는 형식이었을 뿐, 이미 2년 전부터 군 내부에서는 김정은에게 ’청년대장 동지‘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그의 ‘위대성 학습’도 진행되고 있었다. 이는 선군정치의 주력인 군으로부터 ‘김정은 추대’를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합법적인 후계 지위의 안정성을 마련하기 위한 선결 사업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군 대장 칭호를 부여하는 것만으로 그의 후계자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그가 백두혈통의 후계자다운 품격과 자질을 갖춘 지도자라는 점을 군에 각인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다. 고매한 덕성과 사랑을 지닌 자애로운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해줄 충격적인 사건이 필요했던 것이다. 전군에 김정은의 위인적 풍모를 보여줄 바로 그 사건은 ‘죽을죄’를 지어 처형당할 처지에 놓인 인민군 상좌의 목숨을 구제해주는 것이었다.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던 2008년 11월의 어느 날. 인민무력부와 총참모부, 총정치국, 보위사령부 책임일꾼들이 순안구역 소재 강건군관학교 사격장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군 반동분자로 몰린 인민군 상좌의 공개총살이 예고돼 있던 터였다. 사격장 맨 앞 말뚝에는 밧줄로 꽁꽁 묶인 인민군 상좌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처형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입에는 자갈이 물려 있었고, 두 눈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는 인민군 총정치국 선전부 산하 인민군출판사 부사장으로 군 선전선동 자료들과 인민군 신문, 잡지의 출판, 편집, 발행 임무를 수행하던 중, 개인 집 도배를 하면서 1호 영상(김정일)이 담긴 인민군 신문을 초지로 이용하는 반동 죄를 저질러 결국 이날 사형장에 서게 된 것이다.

군에 자애로운 어버이상을 심어줄 적절한 사건을 고민하던 김정은은 보위사령부에서 올려보낸 인민군출판사 부사장 공개처형 안건을 유심히 살펴보다 중대 결심을 내린다. 인민군 상좌의 공개처형이 시작되려던 순간 강건군관학교 마당에 돌연 검은색 차량이 들어섰고, 이내 ‘공개처형을 잠시 중지하고 회관에 모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군 간부들이 회관에 모이자 인민군 보위사령관이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의 긴급 말씀’을 전달했다. 처형 직전까지 몰렸던 인민군 상좌도 영창 관리대원들과 함께 회관 맨 앞자리에 머리를 숙이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사람이 기계가 아닌 이상 살다 보면 과오도 범할 수 있다. 이 동무의 자서전과 경력을 보면 2군단 후방일군(일꾼)으로 복무하다가 정치대학을 졸업하고 당의 정치선전선동 분야에서 일하였다고 하는데, 어머니당이 그의 사상적 변질과 결함을 사전에 고치도록 교양하지 않은 것 또한 잘못이다. 오늘 총살형을 집행한다고 하는데 당장 중지시키고 그에게 재생의 기회를 한번 주자. 그리고 그가 과오의 엄중성을 깨닫고 당과 수령께 더욱 충실히 일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보위사령부 동무들은 비판과 처벌만 하고 총살형으로 하여 평생 남을 그의 가족들의 마음속 그늘은 왜 헤아리지 못하는가.”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의 긴급 말씀’이 선포된 즉시 인민군 상좌는 풀려났고, 그날 밤 그가 거주하는 평양시 락랑구역 아파트 집에도 불이 켜졌다. 책임일꾼들과 이웃 주민들은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의 인민 사랑이 낳은 결실이다’ ‘장군님(김정일)과 꼭 같으신 또 한 분의 절세의 위인을 모시어 우리의 미래는 밝다’라는 내용의 충성의 편지를 올렸다.

전군을 들끓게 한 이 사건을 계기로 ‘존경하는 청년대장 동지’ ‘우리 김 대장’이라며 김정은을 칭송하는 선전 교양 자료들이 군 내부에 쏟아져 나왔고, 자연스럽게 김정은의 후계자 입지는 공고화됐다. 본래 보직으로 돌아간 인민군 상좌는 지금도 자손들에게 ‘원수님(김정은)의 은혜에 대를 이어 충성으로 보답해야 한다’며 위대성 교양에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