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재향군인회’ 출범시도, 안보분열 비판 중론

예비역 군(軍)단체로 유일하게 존재해온 재향군인회(향군)에 반기를 들고 ‘자주’를 내건 평화재향군인회(평군)가 출범을 앞두고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평군은 29일 자체 홈페이지에서 “남북 화해 시대에 맞추어서 평화통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평화재향군인회의 주요한 활동이자 목적”이라고 말했다. 평군은 8.15 이전 출범을 목표로 현재 회원 확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향군은 이 단체 가입 회원을 대략 1백여 명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평군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자주적 안보관과 남북협력 시대에 걸맞는 군 개혁을 주장해온 전 육군본부 정훈감 표명렬(예비역 준장, 육사18기)씨가 임시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향군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다. 여당 내 일부 의원들은 향군의 보수적 성향을 문제삼아 내부 개혁과 제 2 단체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52년 출범한 향군은 63년 제정된 향군회법에 의해 단체 존립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다. 예비역 단체로는 유일하며 향토방위의 한 축을 담당하며 50년 넘게 유지돼왔다. 또한, 군 제대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 특성 때문에 우리 사회 안보 담론을 주도해왔다는 평가다.

향군법은 기존 향군 이외에 동명 단체를 설립하거나 이와 유사한 명칭도 사용할 할 수 없도록 돼있다. 또 향군은 국가보훈처 산하 특수 법인으로 각종 수익사업과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반면, 평군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

표씨는 “재향군인회 이름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면서 “법률이 기득권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 처벌을 받더라도 이름을 계속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향군 관계자는 “과거 군출신 대통령 시절 장성으로 진급하고 퇴역 후에는 민자당 공천까지 신청했던 당사자가 참여 정부 들어 재향군인회를 냉전세력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향군 참여를 통한 변화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데일리엔케이>는 ‘평군 파문’을 계기로 향군의 입장과 평군 표명렬 상임대표, 그리고 이번 파문에 대한 이종구 전 국방장관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재향군인회 이상훈 회장과는 29일 오전 연락이 닿지 않아 유환구 재향군인회 홍보부장의 견해로 대체했다.

[재향군인회 유환구 홍보부장]

-평군이 출범을 앞두고 있다. 재향군인회 차원에서 공식적인 입장이 결정됐는가.

아직 없다. 준비중이다.

-향군 내부 반응은 어떤가.

있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군은 정치조직이 아니다. 향군은 정권이나 특정 세력의 요구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다. 제대 후에도 이 사회 방위와 안보를 위해 군과 함께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안보를 두 단체가 나누어 분담할 수 없다.

-평군 출범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불가능하다. 향군회법에 ‘재향군인회’라는 단체는 하나만 인정하고 있다. 출범하더라도 법외단체밖에 되지 않는다.

-평군은 향군이 냉전보수 세력이 돼버렸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여러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직업군인이었다. 확고한 안보관을 통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향군이다. 남북화해 협력도 튼튼한 안보 위에서 가능하다. 안보를 강조하는 것이 무슨 냉전 보수인가.

-평군 상임대표 표명렬씨는 ‘북한이 잘 못살지만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한다’고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것 아닌가. 향군은 북한 인권의 중요성을 매우 잘 알고 있지만 가능한 자제한다. 매우 빗나간 사고이다. 북한 동포가 굶주리고 고통 받는데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표씨는 또한 미군∙군인∙경찰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100만 명의 진상규명을 촉구했는데.

전쟁 중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많은 분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현재 정부가 법적 절차를 밟아 추진하고 있다. 어떤 근거로 1백만 명을 말하는지는 잘 모른다. 정확한 근거 없이 군과 국가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는 발언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평군을 향군 내부로 흡수할 수는 없는가.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 향군에 먼저 의견을 개진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분열하기 보다는 내부에서 문제점을 같이 해결했으면 한다. 군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 정치적으로 흘러서는 절대 안된다.

▲ 평화재향군인회 표명렬 임시대표

[표명렬 평군 임시 상임대표]

-평군 출범은 언제로 계획하고 있는가.

8.15 이전에 출범해야지 않겠는가. 지금 준비 중에 있다.

-회원은 충분히 확보됐는가.

아직 정확한 숫자는 말할 수 없다. 계속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어떤 일이든 처음에는 배고프기 마련이다.

-평군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꾸 이념적으로 보지 말아달라. 중요한 것은 자주적인 안보관과 군 내부 문화 개선이다. 기본적인 자기 정체성과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총기 사고 같은 것이 발생한다.

-자주적 안보관이란 무엇인가.

우리 민족의 힘으로 국가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친일잔재와 식민사관에 물들어 있다 보니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킬 수 있다는 자부심이 없다. 우리 국력은 이미 높게 성장했다. 한-미 동맹도 불평등한 문제는 고쳐야 하는데 기존 관행과 종속적인 사고 때문에 개혁이 어렵다.

-향군과 다른 길을 가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는.

향군은 지나치게 수구 보수적이다. 시청 집회에 성조기 들고 참가하는 것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빨갱이라고 한다(향군은 통화에서 표씨의 주장을 부인했다). 이런 단체와 더 이상 함께 하기 힘들다.

-법적으로 ‘재향군인회’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돼있는데.

재향군인회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데 법이 기득권만 보호하고 있다. 우리는 계속 이 명칭을 사용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헌법소원도 낼 계획이다. 평군의 이름으로 군 개혁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 이종구 전 국방장관

[이종구 전 국방장관]

-예비역 군 단체가 분열된 이유는.

한마디로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새로운 단체를 발의한 사람들이 군 전체를 더 생각하길 바란다. 개인의 이해 관계로 군 전체를 흔들어서는 안된다.

-평군 출범이 가능하겠는가.

향군회법에서는 재향군인회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법적으로는 힘들다.

-평군은 법외 단체로 ‘재향군인회’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이들에게 어떤 명분이 있는가. 예비역 단체라 해도 군은 분열해서는 안된다. 다양한 민간단체와는 성격이 다르다.

-평군의 취지에는 동감하는가.

취지 자체가 불분명하다. 국가의 안전을 추구하는 군 단체는 정치적 색채를 띄어서는 안된다.

-평군 발족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사회가 너무 복잡하고 분열의 골이 깊다. 정말로 대의를 생각한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길 권하고 싶다. 향군의 활동에 이견이 있다면 참여해서 바꾸길 바란다. 이것이 참다운 군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재향군인회는 법적으로 정치적 색채를 띄지 못하게 돼있다. 결국 이번 평군 출범은 사회적 이념대립이 군까지 확산됐다는 내외의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표씨는 “어떤 비판이 있더라도 평군 출범을 재고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예비역 군 단체의 분열은 현실로 다가올 전망이다.

재항군인회는 이번 평군의 출범을 내부 개혁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많다. 그러나 첨예한 사회적 갈등 시기에 안보분야의 중요한 한 축인 예비역 군 단체에까지 분열행위를 조장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중론이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