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베트남 수평적 소통 문화와 한반도 통일의 지혜

롯데타워에서 바라 본 하노이 시내 전경. /사진=국민통일방송 제공

2년 전 대학교 동기들과 베트남으로 여행을 갔었다. 당시엔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공산주의 국가’라는 느낌만 받았다. 관광 목적으로 갔으니 사회와 통일 역사, 한반도와의 연관성 등은 주된 관심사도 아니었다. 사실 대다수 청년도 비슷할 것이다. 그동안 국내 교육 현장에서 통일 사례로 독일을 거론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탐방에서 한반도와 닮은 점이 많은 베트남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특히 베트남 사람들도 더 깊이 알게 됐다.

2020년 1월 탐방팀이 간 곳은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였다. 과거 1980년대 서울과 비슷하다고 한다. 책꽂이의 책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들, 그 사이에서 우뚝 솟아 있는 롯데타워,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이 잠든 묘소, 동족상잔의 역사를 기록한 전쟁 박물관 등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남북통일 전쟁 그리고 현대의 발달된 모습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고 있는 도시였다.

호찌민은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최종 승리하여 프랑스군을 몰아냈다. 그러나 미국, 소련 등이 가담하고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면서 북베트남의 최고 군사 지휘관으로서 전쟁을 지속했다.

호찌민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2일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호찌민은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피식민지 독립국가의 정치지도자의 한 사람이자 저명한 공산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호치민묘소 앞에 유모차를 끌고 가는 시민이 보인다. /사진=국민통일방송 제공

때문에 지금까지도 하노이 시내 곳곳에 호찌민 박물관, 레닌 동상, 선전물이 그려진 벽화 등 공산주의의 상징물들을 볼 수 있다. 가보지도 않은 북한 평양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다만 정치적인 장소가 엄중하게 통제돼 있진 않다. 모든 시민, 관광객들에게 개방돼 있었고, 동상 밑에서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거나 공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공산주의 독재국가 국민들의 삶의 모습은 아니었다. 만약 북한이 개혁개방을 한다면 평양 시민들도 이들처럼 더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베트남 국민들, 특히 북부 베트남 주민들은 대체로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수평적인 소통을 지향한다. 이들은 남베트남 사람들을 같은 민족으로 여긴다. 공산주의의 ‘인민은 평등하다’는 이념적 영향 때문이다. 현지에서 만난 박낙종 전 베트남문화원장은 “직장 내에서도 직급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소통하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대화를 위해 불필요한 단계를 생략하다 보니 정보를 주고받는 속도도 훨씬 빠르다. 베트남이 최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데에는 이런 소통 문화도 한몫했다.

비록 우리와 다른 체제지만, 이런 베트남식 사고방식은 한반도 통일을 추구하는 데 있어 유용하다는 판단이다. 지금 남북한은 서로를 잘 모른다. 말로는 한민족이라 하지만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상대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조차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필자도 탈북민들을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제는 남한과 북한 주민(탈북민)이 동등한 관계에서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열려야 한다. 서로를 향한 경계심, 우월감 등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국내 일부 통일단체에서는 남한, 탈북 청년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친목을 다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남북한 사회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진정한 화합과 통일의 시작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원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른 문화 속에서 분리된 채 떨어져 살았던 한민족이 다시 공동체성을 회복할 때, 자연스럽게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베트남은 무력으로 통일하면서 남북이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통일 이후 수많은 남베트남 사람들이 체제가 다른 공산주의 정권에 적응하지 못했고, 심지어 억압, 고통받거나 희생됐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베트남 남부 일부 주민들은 북부 주민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과거의 상처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 까. 통일 자체도 중요하지만, 통일 이후 사회통합은 보다 중대한 문제다. 통일 이전 남북한의 이질성을 줄이는 과제가 선결돼야 통일 이후 사회적 혼란이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노이 주택. 촘촘히 붙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띤다. /사진=국민통일방송 제공

인상 깊었던 베트남의 주거 문화를 언급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듯, 베트남의 주택은 도로에 인접해 있는 가로 폭은 좁고 그 뒤로 길게 지어져 있는 형태를 띤다. 그리고 틈 없이 촘촘하게 붙어있다. 처음 봤을 때 마치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이 떠올라 상당히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왜 그런가 하니 프랑스 식민지 이래 가혹한 세금 적용을 면하고자 한 베트남인의 독특한 주거양식이라 한다. 억압된 환경을 이겨내려 했던 삶의 의지가 느껴진다. 나태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이제 한반도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편집자 주 : 국민통일방송 주최로 열린 제2기 북한통일 기자아카데미에서 선발된 남북청년 5명이 지난 1월 6월부터 11일까지 ‘베트남의 개혁개방사례를 보고 한반도의 미래를 그려본다’는 목표 아래 하노이 및 외곽지역을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