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입국 목적이 웰빙(well-being)이라고?

최근 탈북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것인지 탈북자에 대한 연구논문 발표와 세미나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외롭게 탈북자 문제에 대해 고민해오던 입장에서 이제 이런 상황 변화를 뒤 켠에서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최근 북한주민의 탈북과 입국자의 목적이 ‘웰빙’ 추구로 변화했다는 일부 연구자의 발표와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무거운 책임감이 든다.

‘차상위계층’과 웰빙(well-being)

이미 2001년 중국과 국내에서 탈북자의 탈출목적을 조사한 결과 식량난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절대적 생존위협에 처한 북한주민만이 아니라 이러한 위협에서 벗어난 계층에서도 탈북행렬에 동참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스스로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탈북 목적이 ‘더 나은 삶의 추구’로 변화되고 있음을 처음으로 제기한 것이다. 당시 논문 발표 직후 유력 언론사 기자와 탈북자자원단체 관계자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았다. 비판을 받은 이유는 2001년 당시는 탈북자 문제가 국제적으로 이슈화된 초기 시기였고, 국내 입국도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를 위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는데, 탈북의 목적이 일부이지만 더 나은 삶의 추구로 변화하는 경향이 있음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분위기를 냉각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연구결과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결과를 왜곡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그런데 당시의 애정 어린 비판이 이제야 가슴을 파고 든다. 당시의 표현이었던 ‘더 나은 삶의 추구’는 현재 ‘웰빙(well-being)’으로 격상되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웰빙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웰빙’은 말 그대로 건강한(well, 안락한•만족한) 인생(being)을 살자는 것이다. 웰빙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 ‘안녕’, ‘복지’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는 균형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웰빙은 이러한 사전적 의미보다는 요가나 스파, 피트니스 클럽을 즐기면서 생수도 마시고 비싼 무농약 유기농식 재료를 선호하는 등 지나친 건강과 미용에 대한 집착과 같이 고급화된 삶의 질 추구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탈북자의 입국 목적을 웰빙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탈북자문제, 부정적 인식 확산세력 있나?

북한의 식량사정이 한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일부나마 호전되어 1996~98년의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현재 탈북자는 굶주림으로 인한 절대적 생존 위협은 피한 사람이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이 건강을 위하여 물을 가려마시고 대기오염을 염려하고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피트니스 클럽을 이용하기 위해서 모두에게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한국행을 결행했다고 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최근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탈북자의 입국이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정부지원금 과다, 취업 애로, 범죄와 같은 사회적 문제 발생,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등의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려는 세력이 있어 보인다. 이들이 웰빙의 표현까지 용납되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아닌가.

탈북자의 대량발생과 대규모 입국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최선도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미래상황에 대한 예측보다 현재의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탈북자의 입국목적을 웰빙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들의 탈출과 입국에 대한 사실인식을 왜곡하는 것이며, 이들의 입국을 반대하는 여론몰이에 근거를 제시하는 의미를 갖게 된다.

탈북자의 탈출상황은 이들의 성격을 규정짓는 중요한 사안이다. 또한 성격 규정은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매우 신중해야 할 사안이다. 탈북자의 탈북과 입국 목적이 북한에서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서 왔다면 이들은 난민으로 간주될 것이며, 굶주림으로 절대적인 생존의 위협을 피해서 왔다면 우선적인 지원과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웰빙’이라면 이들을 받아들이고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사회 구성원이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사회에서도 웰빙은 그저 바라보는 대상일 뿐이며, 소수의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탈북 입국자에게 적용하는 ‘웰빙’ 개념의 적합한 표현은 사회복지에서 사용하는 ‘차상위계층’일 것이다. 차상위계층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하여 최저생계비를 지원받는 수급자가 아닌 자로서 실제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분의 120 미만인 자를 말한다. 최근 탈북 입국자의 대부분은 북한에서 최저생계 수준이었으며 일부가 ‘웰빙’이 아닌 ‘차상위계층’ 차원에서 탈출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의 추구’가 ‘웰빙’ 개념으로 변질된 것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이들의 입국 성격을 규정하는 적합한 용어를 제시해야 하는 또 다른 책임감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도 북한주민의 소망이 진정한 ‘웰빙’이 되길 희망한다면 지나친 과욕일까?

윤여상 / 객원 칼럼니스트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