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정은은 전단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고 8일 밝혔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요즘 북한 노동신문이 가관이다. 지면의 상당 부분을 대남 비난에 할애하고 있다. 6일자 1면의 하단 전부를 대북전단 살포와 이를 묵인하고 있다는 남한 당국 비난 내용으로 채우더니, 7일자 1면 하단도 대남 비난 내용으로 가득 채웠다. 오늘(8일)자 노동신문도 대남 비난 내용이 한가득이다.

대외 선전매체들도 열을 내고 있다. ‘우리민족끼리’는 7일 ‘달나라타령’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아냥대는가 하면, ‘메아리’도 7일 ‘사상 최악의 무지·무능 정권’이라며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오늘(8일)도 ‘조선의오늘’은 통일부의 6·15 공동선언 20주년 행사 준비를 ‘철면피한 광대극’이라고 욕하는가 하면,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남한) 당국은 ‘초불정권'(촛불정권)의 모자를 썼는데 속은 이전 보수 정권들을 너무도 꼭 빼닮았다”고 비아냥댔다.

이뿐만 아니다. 북한 전역에서는 지금 대남 규탄 시위가 진행 중이다. 평양종합병원 건설장,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기관차대학 등에서 규탄집회가 열렸고, 평양의 청년학생들과 개성의 노동자들도 대규모 대남 규탄시위를 진행했다. 전단살포와 남한에 대한 비난을 전사회적으로 몰아가고 있는 분위기로 볼 때, 전국 각지에서 대남 규탄시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오늘(8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우리 측 전화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연락사무소 잠정폐쇄 수순에도 들어갔다.

노동당 정치국 회의, 전단 언급은 없어

이런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은 어제(7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었다. 정치국 회의는 북한 노동당의 중요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다. 이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네 가지를 논의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보도했다. 첫째 화학공업을 발전시키는 문제, 둘째 수도 시민들의 생활보장 문제, 셋째 당규약 개정 문제, 넷째 조직문제(인사)다.

그런데, 북한의 요즘 분위기와 비교해보면 뭔가 의아하다. 전사회가 전단살포와 남한 당국에 대한 비난으로 들끓고 있는데, 중요한 정책을 논한다는 정치국 회의에서 남한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었다. 김 위원장은 화학공업 발전과 수도시민들의 생활보장 등 지극히 민생 현안들에 대해서만 다뤘다.

일견 부조화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이걸 북한의 시각에서 전체적으로 조망하면 이렇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면돌파전의 기치 아래 자나깨나 민생현안을 돌보고 있는데, 불한당같은 탈북자들과 남한 당국이 감히 최고존엄을 모독하면서 북한에 도발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불한당 같은 놈들에게는 최대의 적대감을 갖고 징벌에 나서야 한다.” 이렇게 구도가 잡히는 순간 북한 내부의 어려움은 외부의 탓이 되고 내부에서 불만을 제기할 공간도 사라진다. 대북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북중 국경봉쇄 등으로 어려워진 경제상황은 김 위원장이나 북한 정권의 잘못과는 관계가 없게 되는 것이다.

긴장 조성하는 북한 내부 수요 해소되어야 상황 변화

대북 전단이 정말 북한 정권이 간과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문제라면 왜 이 시점에 열린 정치국 회의에서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을까? 화학공업 발전과 수도시민들의 생활보장이 논의되는 자리에서 전단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단 문제가 화학공업 발전이나 수도시민들의 생활보장보다 후순위에 있다는 것이고, 전단 문제는 김여정 선에서 처리해도 될 정도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전단 문제에 대해 북한 정권 핵심이 지금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대남규탄시위가 긴장 조성과 내부 결속이라는 자체 수요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면 북한의 내부 수요가 어느 정도 해소되어야 상황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주목해볼 점이 있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위상이다.

김여정의 위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지만, 김정은이 직접 나서지 않은 채 김여정의 주도로 전국적인 대남규탄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은 김여정이 2인자라 할 만한 위상에 올라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여정이 김정은의 후계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지만, 김정은에게 예기치 않은 사고가 생길 경우의 예비 권력자라는 차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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