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단위 생활 밀착형 탈북민 정착지원 제도 필요”

최근 서울에서 탈북 모자(母子)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탈북민 정착지원제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 단위의 지원책도 중요하지만, 탈북민들이 지역사회에 적응하고 융합할 수 있도록 지역 사회단위 차원의 지원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수경 통일연구원 인도협력실 부연구위원은 13일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국가가 탈북민들을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었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생활밀착형 지원을 통해 탈북민들이 지역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실제 탈북민들을 살아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곳은 지역사회이기 때문에 국가 차원이 아닌 지역 차원에서 정착 지원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 “탈북민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생활밀착형 북한 이탈 주민 지원제도를 만들어가겠다는 기조를 세우고 제도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통일부는 생활밀착형 지원을 통한 탈북민의 삶의 질 향상 및 포용적인 사회 환경 조성한다는 정책목표를 세우고 ‘2019년 북한 이탈 주민 정착지원 시행계획’을 시행 중이다.

시행계획에는 ▲생활밀착형 서비스 확대 ▲탈북민 정책 협업체계 강화 ▲개인별 사례 관리 강화 ▲취약 탈북민 지원 ▲무연고 탈북민에 정기적인 전화・현장 상담 및 방문을 통해 정착상황을 지속 관찰하고, 실패·고립·질병 등 상황별로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탈북민의 정착을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도 생계곤란자를 대상으로 연간 최대 100만 원의 긴급생계비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 제도를 통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1730명의 탈북민이 9억 4800만 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민들은 주로 스스로 정착 지원을 신청해야 하는 만큼 사회와 단절된 사람들에 대한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탈북민 스스로도 외부와 소통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번 사건을 지켜본 탈북민 A 씨는 “너무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다”며 “곳곳에 사회와 단절된 탈북민들이 있을 수 있기에 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탈북민 B 씨도 “정부 지원 제도에 사각지대가 있는 것도 이번 사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면서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탈북민들이 외부와의 소통을 통해 도움을 주고받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탈북민 정착 지원 제도 중 탈북민의 신변을 보호하는 ‘신변보호관’ 제도에 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12월 작성한 ‘북한 이탈 주민 신변보호제도 개선방안 실태조사’에서 “현재 거주지보호 담당관과 취업담당관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신변 보호 담당관이 있다”며 “역할 분담이 미래지향적으로 개선하고 정착 도우미들을 사례관리자로 양성함으로써 보호관찰 성격이 강한 신변 보호 담당관의 역할 과잉을 축소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변보호관의 인력 부족,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 제도 운용이 어려움이 있으며 경찰 신분이라는 점에서 탈북민 정착지원 업무까지 담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탈북민들이 경찰로부터 장기간 ‘보호’를 받는다는 것에 감시를 받는다고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보고서는 신변보호제도를 법적 근거에 따라 원칙적으로 통일부가 전담·운영하되 위험방지가 필요한 경우 경찰청의 협조를 얻는 방식으로 탈북민 보호제도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번에 사망한 한 씨는 지난해 10월 관악구에 전입한 이후 관할 경찰서의 신변 보호 담당관과 연락이 닿지 않았고, 탈북민의 지역 정착을 돕는 관할 하나센터와도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는 정부 제도의 사각지대를 보완도 필요하지만 탈북민 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정부의 손길이 닫지 않는 음영지역을 돌봐야 한다고 전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 13일 ‘故 한성옥 母子(모자) 餓死(아사)와 관련하여 탈북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라는 장문의 글을 통해서 “헌법상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보호 의무를 지고 있는 정부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면서 “그러나 우리 탈북민들은 정부의 책임이나 남한 사회의 무관심 문제를 따지기에 앞서 같은 탈북민으로서 곁에서 그의 어려운 처지를 미리 알고 어루만져 줄 수는 없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태 전 공사는 “탈북민 정착실태의 미흡한 점을 재점검하는 계기를 만들고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자”며 “두 모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또 다른 탈북민들을 찾아내고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는 탈북민들의 협의체를 만들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데 모두의 지혜와 힘을 합치자”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