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찾아 死線 넘었지만 편견·차별로 떠도는 탈북민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 탈북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를 통해 북한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다 열차 사고로 팔과 다리를 잃은 지성호 씨, 함경북도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서 9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다 탈출한 김영순 씨, 김정일 정권의 비자금을 해외에서 관리하다가 탈북한 김광진 씨 등 탈북자들의 사연이 국제사회에 알려졌다. 뒤늦게 국내에서도 탈북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통합 및 대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유를 찾아 목숨 건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 탈북민의 95% 이상이 대한민국으로 가길 희망한다. 탈북자들이 한국을 선택하는 이유는 우선 언어가 통하고,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이 정착을 도와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 정착한 탈북민 10명 중 3명이 ‘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답한 최근 조사결과(북한인권정보센터, ‘2017 북한이탈주민 경제사회통합 실태조사’)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삶을 보여준다. 

탈북자 출신 통일학 박사 주승현 씨의 저서 ‘조난자들(생각의 힘)’은 자유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남도 북도 아닌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탈북자들의 녹록지 않은 삶을 다룬다. 
 
이 책은 25분 만에 비무장지대를 건너 10년 만에 통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주승현 씨의 자전적 에세이이면서 한국의 뒤틀린 현대사와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탈북민인 그는 스스로를 ‘조난자’라고 부른다. 탈북민은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재앙을 맞아 난파된 자라고 보기 때문이다. 

주 씨는 2002년 비무장지대에서 북측 심리전 방송요원으로 복무하다 휴전선을 넘어 한국에 왔다. 휴전선을 건너는 데에는 불과 25분이 걸렸지만, 그날부터 시작된 트라우마는 10년 넘게 저자를 괴롭혔다.

“너 왜 왔어?” 짧은 휴식을 마친 나에게 던진 담당관 A의 첫 질문은 싸늘했다. ‘혹시 방한복을 벗지 않은 것 때문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고 얼떨결에 내뱉었다. “그럼 다시 돌아갈까요?” 아차 싶은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공포가 엄습했다. “그런 태도면 이곳에서 영원히 나갈 수 없어.” 비로소 나는 대북 확성기 방송과 남측에서 날려 보낸 전단지 속의 배려와 환대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비무장지대라는 사선을 넘어왔지만 또 다른 사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오기뿐만 아니라 자존심도 내려놔야 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했다. p.28

책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탈북자를 향한 편견과 차별, 배제를 개인적 경험과 역사적 사실 등 다양한 시각으로 비춰낸다. 1부는 저자 본인의 북한에서의 어린 시절과 탈북 과정, 한국에서의 삶 등 자전적 경험을 통해 굴절된 한반도의 현대사를 보여주고 2부에서는 1945년 해방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한반도의 조난자들을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한반도의 조난자들은 비단 탈북민만이 아니다. 4‧3 사건의 학살을 주도했던 서북청년단부터,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자유를 찾아 헤매지만 계속해서 고통 받는 사람들, 북한으로 떠나는 만경봉호에 올랐던 북송 재일동포들과 정대세를 비롯한 조선적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중간첩 이수근, 독일 망명자였다가 북한으로 들어간 후 다시 탈북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오길남, 주체사상의 입안자였으나 비운의 망명객으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황장엽, 그리고 탈북과 탈남과 재입북을 반복하는 이들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또한 저자는 분단으로 굴절된 현대사와 그로 인한 기형적 사회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한반도의 사람들 모두가 ‘조난자들’이 아닐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 책은 스스로가 조난자이면서 또 다른 조난자를 양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현실을 성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