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02)학번이 82학번 선배님들께

▲ 신간 <82들의 혁명놀음>, 우태영 지음, 선

스무 살의 저에게 ‘대학’은 희망과 자유의 공간이었습니다. ‘고3’이란 이름을 떨쳐 버리고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는 기쁨은 평생 제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대학에 입학하셨던, 저보다 꼭 20년 선배이신 ‘82학번’ 선배님도, 대학에 입학할 때 저와 같은 기쁨과 설렘을 느끼셨을까요?

<82들의 혁명놀음>이라는 책을 읽으며, ‘대학 새내기’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쁘고 설레는 건 우리세대만의 것은 아니었음을 우선 알게 되었습니다. 20년 전의 선배님들도 ‘학력고사’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 대학에서 첫 ‘자유’의 희열을 느끼셨겠지요.

그러나 우리 세대와 선배님들의 세대가 다른 점은, 그 시절의 선배님들은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찾아 볼 수 없는 분노와 절박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재와 권위주의에 대한 분노, 참다운 민주주의를 이뤄내야겠다는 절박함 말입니다.

‘그때 데모 한번 안 해 본 사람 없었다’는 말처럼 1980년대의 선배님들은 누구나 ‘독재와 억압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을 의무감처럼 지니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불의에 저항하는 도덕적 확신에서였지요.

독재와 억압에 침묵하지 않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선배님들의 외침은 결국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독재와 권위주의는 ‘정의’의 목소리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20년 전 선배님들이 갖고 있던 그런 용기와 희생정신은 저에게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또 ‘나도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용감한 젊은이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선배님들의 정신이 ‘대학생은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는다’는 공식 아닌 공식으로 이어져 아직도 한국 대학사회에 푸르게 맥박치고 있습니다.

왜 북한인권에 침묵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선배님들!

선배님들의 화려했던(?) 과거를 상상하며 <82들의 혁명놀음>을 읽었던 저는 잠시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배님들의 학생운동이, “한국사회는 식민지”라는 착각의 모래성 위에 세워진 이른바 ‘NL이론’(NLPDR,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에 기반해 있었고, 또 북한의 주체사상까지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북한의 김정일 정권 치하에서 지난 10년 동안 수백만 명의 주민이 굶어 죽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북한의 공개처형 장면이 공개되는 등 인권 실상 또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합니다.

▲ 80년 신군부의 광주 학살에 분노했던 선배님들은 왜 북한정권의 ‘기아학살’에는 침묵하는 것입니까? 아래 사진은 길에서 굶어죽은 북한 어린이.(2003년 함경북도 청진)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면서 저는 왜 과거 ‘민주주의’를 외치던 선배님들은 북한의 인권문제와 민주화에 신경 쓰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을 원죄처럼 여기며 대학을 다녔다는 선배님들은 왜 수백만 명이 정권의 방치 속에 ‘기아 학살’당한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 하신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82들의 혁명놀음>을 읽으며 약간 의문이 풀리더군요. 선배님들이 ‘주체사상’을 따르면서 북한의 정치구호를 그대로 베끼고, 북한의 대남 라디오 방송을 지침으로 삼고,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들에 의해 조종되기도 했다니! 그래서 아직까지도 친북, 아니 친김정일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대미문의 독재와 인권탄압의 현실을 모른척하는 것, 혹시 그것은 주체사상을 받아들이고 맹목적으로 김일성을 추종했던 선배님의 과거 때문은 아닙니까? 이제는 그것을 대북 관용정신(?)으로 치장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허상과 착각에 빠져있는 한총련 후배들을 타일러 주셔야

물론 82학번 선배님들, 나아가 ‘386’ 혹은 ‘486’으로 불리는 80년대 학번 선배님들 모두를 매도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많은 분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선배님들!

80년대의 암울한 현실 속에 허우적대던 그 시절, 현실의 늪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고 어린 후배에게 변명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변명으로 훗날 있을 역사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몇몇 선배님들은 과거 친북운동을 했던 부끄러움과 북한인민에 대한 미안함으로 ‘북한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고 계십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선배님들은 그런 ‘정의와 양심’을 져버린 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김정일 정권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한총련 후배들이 있습니다. 세력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매년 수백 수천 명씩 한총련 새내기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제가 분노하고 절망하는 것도 이 대목입니다.

▲ 여전히 정신 못차리는 <한총련>에 선배님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김정일이 살면 인민이 죽고, 인민이 살면 김정일이 죽는다’는 처절한 북한 주민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20년 전, 불의에 항거했던 선배님들의 모습으로 다시금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쳐야만 합니다.

그리고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후배들만큼은 허상과 기만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20년의 차이를 넘어 북한민주화운동의 ‘동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선배님들!

저는 더 이상 선배님들의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없습니다.

과거 한국을 민주화시켰던 기억만 회상하며 자신들의 희생과 열정에 대한 평가만 바라고 있다면, 이제 ‘내 일은 끝난 듯’ 북한의 현실을 방치하고 있는 선배님들이라면, 저는 오히려 선배님들이 부끄러워질 것 같습니다.

아니, 선배님들을 ‘바로 눈앞의 독재에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지만 지척에 있는 내 동포의 절규와 잔혹한 독재에는 모른 척한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이라고, 저는 제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선배님들은 독재와 싸운 투사가 아니라 왕(王)독재의 하수인이자 협력자밖에는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까마득한 20년 후배가 무례하게 말한다고 미간을 찌푸릴 선배님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선배님들의 권위와 독재를 거부하여 싸우셨다면, 이제 어느새 우리 사회의 권위와 독재가 되어버린 선배님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후배들의 이런 절절한 외침에 귀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20년 뒤,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주체가 될 후배들에게 ‘82학번과 산소학번은 세대를 뛰어넘어 지구상 마지막 독재와 맞서 싸웠다’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들려줄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것이 지금 자라나고 있는 선배님의 자식들에게도 최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김송아 대학생 인턴기자 ksa@dailynk.com

김송아 대학생 인턴기자는 전북대학교 02학번으로 상과대학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경제문제 연구 동아리 [Do Dream] 회장이며 북한인권와 한국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