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한류(韓流) 차단을 노린 ‘악법 3종세트’

제8차 당 대회 결정 관철을 추동하기 위한 청년전위의 궐기대회가 평양에서 열렸다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2월 19일 보도했다. /사진=노둥신문·뉴스1

최근 한국의 전통 놀이를 테마로 제작한 넷플릭스의 9부작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상영되고 있는 88개국 모두에서 1위를 기록하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뉴 노멀(new normal)이 되고 있다. 드라마, 영화, K-팝, 클래식 등 장르를 불문하고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글로벌 지구촌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데 예외인 곳이 딱 한 군데 있다.

다름 아닌,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가진 북녘 땅이다!

김정은은 집권 후 말로는 ‘애민’ ‘우리민족끼리’를 외치고 있지만, 입법 활동과 국경 통제 강화, 대외교류협력 거부 등으로 주민들의 알 권리와 민족동질감 형성을 저해 하고 있다. 특히 이른바 ‘남한풍’이 장마당 세대를 비롯한 사회 저변에 확산되고 있는 현상을 차단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김정은이 보다 공세적으로 사회주의 수호전을 진행할 것을 주문함에 따라 청년들의 옷차림이나 남한식 말투·행동을 집중 단속한다…..북한에서 남편을 오빠로 부르는 한국식 말투를 쓰다 걸리면 혁명의 원수로 낙인찍혀 최대 2년의 징역형(노동교화형)에 처해진다. ‘남동무’(남자 친구) 대신 남친을 써도 마찬가지다.”(2021.7.8. 국가정보원의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7.9자 조선일보 재인용)

청년교양보장법이 갖는 의미

얼마 전 폐막된 최고인민회의(9.28~29)에서 채택된 ‘청년교양보장법’도 이런 선상에서 입안된 법으로 추정된다. 남북통신선 재가동 등 핫이슈가 포함된 김정은 시정연설에 가려 동 법안이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한류·외부자유사조 확산 차단을 위한 법적 장치의 최종병기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전문을 보지 못해 세부 조항을 알 수 없으나, 그간 김정은의 발언과 법의 명칭 을 고려해 볼 때 지난해 말 통과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이동통신법’에 이은 ≪악법 3종 세트≫의 완결판임이 분명하다.

당의 당세포들은 오늘날 청년교양문제를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운명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이 사업에 품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2021.4.9. 김정은의 제6차 세포비서대회 결론), “공화국 정부는 사람들의 의식상태와 변화된 환경에 맞게 자라나는 새세대들 속에서 공산주의 도덕 교양, 집단주의 교양을 방법론있게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2021.9.28.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제145차회의 시정연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2일차에 시정연셜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0일 보도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악법 3종 세트의 핵심 특징

2020년 12월 채택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사후 처벌, ‘이동통신법’이 기기 사용 규제에 주안을 둔 것이라면, 지난 9월 말 통과된 ▲‘청년교양보장법’은 사전 예방에 초점을 둔 법이라고 평가된다. 핵심적인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남한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한 자도 징역 15년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한 최악의 악법 중의 악법이다. 남한식 말투를 쓰거나 노래를 부를 경우에도 적발된다. 이 같은 고강도 처벌은 김정은이 “외부자유 사조가 북한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영국 BBC 방송은 김정은이 “무기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2021.6.7)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12월 북한에서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채택되고, 한국에서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강행 처리되었다.

둘째, ‘이동통신법’은 핸드폰을 사용하는 주민이 이미 600만 명을 넘어섰고 4차 산업 혁명시대 IT 인프라망 확충이라는 미래 과학기술적 수요가 당연히 있지만, 불법 영상물 확산과 정보 유출 등 체제 보위 요소도 고려하여 독소조항을 삽입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점은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결과를 보도하면서 “반사회주의 사상 문화의 유입과 유포 행위를 철저히 막고 우리의 사상, 정신, 문화를 굳건히 수호한다”(2020.12.4.)고 강조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셋째, 북한은 ‘청년교양보장법’을 채택한 지 10여 일이 지났으나 개략적인 내용이나 해설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동 법의 제정은 젊은 세대의 외부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단순히 감시장치 확충이나 사후 처벌 강화만으로는 억지할 수 없다는 인식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조치는 외부사조에 취약한 새세대에 대한 사상교양을 보다 근원적· 선제적으로 실시해 나가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세포들은 청년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청년동맹초급조직들에만 맡겨놓는 편향을 철저히 극복하고 이 사업을 당원대중의 사업으로 확고히 전환시켜야 하겠습니다……당원들이 의식적으로 청년교양에 관심을 돌리며 특히 자녀교양에서 책임을 다하도록 하여야 합니다…..청년들의 옷차림과 머리단장, 언행,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하여서도 어머니처럼 세심히 보살피며 정신문화생활과 경제도덕생활을 바르게, 고상하게 해나가도록 늘 교양하고 통제하여야 합니다.”(2021.4.9. 김정은의 제6차 세포비서대회 결론)

태영호 의원은 동 법이 입법 예고되자 “북한의 사회주의 시스템이 몰락 단계에로 접어들었다는 의미이다. 통일 준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8.31)했으나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본지가 입수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설명자료에는 “많은 양의 남조선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를 유입 및 유포할 경우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진=데일리NK

결어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 헌법에 “언론·출판·집회·시위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순전히 구색맞추기·대외홍보용일뿐이며 주민들의 기본권 침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정은은 대북 제재, 코로나19 팬데믹, 자연재해의 3중고가 장기화되는 국면에서 오히려 문을 더욱 굳게 걸어 잠그고 인간·사회 개조(일종의 김정은몽(夢))를 실험하고 있다. 당국자들은 국제사회의 항의에 대해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특수성을 강변한다.

그러나 이른바 ≪악법 3종세트≫는 분명한 개인 기본권 침해법이고, 한민족 공동체 건설의 과정에 반(反)하는 반통일적 법이다.

도대체 영상물 한 편을 보거나 전파한다고 최고 사형(死刑)까지 구형하는 나라가 지구상 그 어디에 있을까? 그것도 모자라서 청년들을 특정해서 국가가 강제로 사상교육을 시키는 법령을 제정하는 게 과연 말이 되는가?

정부는 관련법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데일리NK에서 2월에 입수한 반동사상 문화배격법 해설 자료를 비롯한 언론이 보도한 개략적인 내용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북한 법령은 기밀사항이 아니다. 보유하고 있는 법은 즉시 공개하고, 최근 북한이 통과시킨 법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입수하여 민간에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분야의 기관, 학자, 활동가들이 연구·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만을 위해 존재하는 부처가 아니다.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자유민주통일국가를 건설해 나가기 위해서는 인류보편적 가치에 위반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당당히 문제점을 제기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북한과의 대화 복원에 목을 메고 있는 정부의 곤혹스런 입장을 이해한다고 치자. 그래도 자유민주사회의 최대 장점인 민간이나 국제기구·단체를 활용하려는 마인드는 가지는 게 최소한의 상식이 아닐까?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목적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김정은의 불편한 심기를 예단하여 북한 주민들의 기본권 침해에 대해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잘못된 행동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방조를 넘은 동조이고, 공동정범(共同正犯) 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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