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김정은 승부사적 면모,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정권수립 73주년 기념 민간 및 안전무력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9일 0시 환영곡이 울리는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병광장 주석단에 나왔으며, 김 총비서가 열병대원들과 경축행사 참가자들을 향해 손을 저어 답례하며 전체 인민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보냈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 열병식에 참석했으나 별도의 연설은 하지 않았다./사진=노동신문·뉴스1

최근 들어 김정은은 롤러코스트식 인사를 통해 군 최고지도부를 전면적으로 쇄신한 가운데 대외적으로도 매우 강경한 메시지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의 장기화로 인해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지만, 중요한 탈출로가 될 수 있는 한국과 미국의 거듭된 대화 제의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핵·미사일 강국 건설’ ‘제2 고난의 행군’ 기치를 내걸고 공포통치, 사회개조, 핵·미사일 개발의 가속 페달을 더욱 세게 밟고 있다.

지난해 6월 야만적인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국면 속에서 페쇄되었던 남북한 간 통신선 복원 조치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구름 위에 살짝 띄워 놓은 후 곧바로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 들어 향후 핵협상의 스펙트럼을 최대한으로 늘렸다. 이후 통신선 재폐쇄, 순항미사일-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도발을 통해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으며, 며칠 전에는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김여정을 내세워 문재인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입에 담을 수 없는 독설과 협박을 퍼부었다.

김정은에 대한 상반된 평가

김정은의 이 같은 통치행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각에서는 국정 경험이 일천한 애송이, 잔인무도한 폭군으로 묘사한다. 한발 더 나아가 건강이상·경제난 등을 이유로 정권의 미래가 극히 불투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런 평가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과 한반도 주변 역내질서의 복잡성을 가볍게 본 매우 단선적인 분석이다. 지난 30여년의 ‘헛다리 짚기’ 경험을 반추해 보며 조금은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략가, 심지어는 실용주의자·애민지도자로 칭송하기까지 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계몽군주’론이다. 지난달에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갈망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타임지와의 기자회견(6.24)에서 김정은은 “매우 솔직(honest)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 국제적인 감각도 있다”는 인터뷰를 했다가 국내외 언론·단체로부터 “망상(illusion)에 빠져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한술 더 떠,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김정은을 ‘CEO’로 평가하면서 북한이 8차 당대회 당규약을 분칠하여 개정한 것을 두고서는 “남조선혁명을 포기하였다”는 주장까지 하였다. 아전인수(我田引水)·곡학아세(曲學阿世)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4~2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제1차 조선인민군 지휘관·정치일꾼 강습회를 주재했다고 같은달 30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국가지도자의 이중성: 전략전술적 행보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에 대한 평가는 냉철해야 한다. 고정관념(stereotype)에 매몰되어 꼭 봐야 할 부분을 놓치거나, 소망성 사고(wishful thinking)로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내면과 외면의 세계를 함께 가지고 있으며, 주변과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국가의 지도자는 안보·국익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버리거나, 분식(粉飾)하거나, 다른 사람·조직·국가를 희생물로 삼아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특히 북한은 70년 수령 유일독재체제이기 때문에, 김정은은 이른바 극장국가(Theatre state)의 최고 연출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필자는 김정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통해, 그를 ‘콤플렉스와 야망을 지닌 독재자, 승부사, 냉혈한’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즉 어린시절부터 김정은의 내면세계를 지배해온 ‘서자·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부정적으로 표출되면 즉결 공개처형과 같은 ‘경계선 성격장애’로 나타나고 있으며,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핵개발 올인·미국과의 담판 등 ‘대담한 정책 결정·추진’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일종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승부사적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중점 추진하고 있는 공격적인 권력층 정비, 2013년 이후 4차례의 핵실험과 120여 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 병진노선에 기초한 판갈이 싸움, 2018년 평화공세로의 대전환, 2019년 2월 하노이 외교 대참사 이후 미국과의 제2 대결전, 코로나19-경제난-자연재해 등 3중고하에서도 외부세계와의 교류협력 거부, 최근 김정은식 인간·사회개조 운동 등은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 과감성 측면에서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정은의 특정성격만 부각해서는 안 되며, 매우 복합적인 심리구조를 가지고 있는 ‘두 얼굴(Janus)의 지도자’라는 가정하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접근해 나가야 한다. 특히 그가 보이고 있는 일련의 대내외 행보는 즉흥적인 게 아니라, 장단기 계획이 있는 전략전술적 행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청년절 30주년 경축 행사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지난 1927년 8월28일 김일성 주석이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결성한 것을 청년절의 시초로 보는 북한은 지난 1991년 청년절을 제정해 국가적 명절로 보내고 있다./사진=노동신문·뉴스1

결어 : 김정은은 콤플렉스와 야망을 지닌 독재자, 승부사이다

따라서 이 같은 김정은의 통치행태를 고려해 볼 때, 그는 기본적으로 내적 콤플렉스가 강한 극장국가의 리더이며, 승부사적 기질을 지닌 독재자로 평가된다. 이 같은 목표지향적 리더십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공격적 성향에다 ▲집권이후의 脫김정일·권력 조기장악 의지 ▲미국과의 대결구도 조성을 통한 내부 단도리 필요성 ▲정통성 확보 및 김씨일가 영구집권 기반 구축 야망 등이 종합적으로 어울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했다. 김정은에게 선의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이기 때문이다. 하나를 주면 둘을 달라고 하고, 둘을 주면 열을 달라고 할 인물이다. 아니, 우리가 가진 모든 걸 가지고 싶어한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게다가 북한 체제는 이제 핵개발이 9부 능선을 넘어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궤도에 진입해 있다. 북핵폐기는 사실상 요원해지고 있다.

외형적으로 드러난 면은 물론 이면과 특수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마인드가 더욱 필요할 때이다. 북한과의 대화·협력, 당연히 필요하다.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당당해야 한다. 김정은이 비핵화를 거부하는 상황에 대비한 플랜B도 함께 검토해 나가야 한다.

남북 간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체제 건설 구상, 개념적으로는 당연히 옳다. 그렇지만 남북한 관계는 독재자 김정은과 다양한 이해당사국이 어우러져 있는 복잡게임이다. 대한민국 안보와 국익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국격과 국민적 자존심도 생각해야 한다. 고정관념이나 소망이 앞서면 판단에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김정은의 실체와 내면세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헝클어진 대북정책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고 바람직한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는 첫걸음이다.

사안의 본질을 직시하고 장기적·실용적 관점에서 김정은과 북한을 제대로 상대해나가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 정말 긴요한 때이다.

※ 본 정론과 관련된 보다 세부적인 사항은 필자가 출간한 『김정은 대해부』(2019.4), 『김정은과 바이든의 핵시계–알기쉽게 풀어쓴 ‘자유 대한민국’』(2021.7)을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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