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김정일 ‘꼼수’ 닮아가나?

▲ 여소야대 극복 불가피를 주장하는 노대통령

노무현(盧武絃) 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꼼수’를 닮아가는가?

노 대통령은 5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한국정치,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정계∙학계∙언론계가 연정(聯政)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소야대 구도로는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며 연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경제도 살리고, 부동산도 잡고, 노사문제도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여소야대에서는 정부가 모든 국정 현안을 국민들에게 만족시킬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여전히 대통령은 약자이며, 소수이자 피해자라는 인식이 짙게 묻어난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연정이 안돼서 국정 운영이 안 되는 게 아니며 노 대통령은 국정 실패의 책임이 야당에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도 안된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국정실패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기 위한 ‘돌출발언’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김정일, 서관히 간첩으로 몰아 식량책임 덮어 씌워

북한 식량난이 극심했던 1997년 평양 통일거리에서 군중들을 집결시켜 놓고 서관히 중앙당 농업담당 비서에 대한 공개 처형이 진행됐다. 김정일은 식량난의 책임을 물어 서관히에 대한 공개총살을 직접 지시했다.

당시 평양시 재판소장이 낭독한 판결문에서 “서관히는 미국의 고용간첩으로 30년 간 암약했으며 당의 농업정책을 말아먹기 위해 음으로 양으로 책동했다. 토양에 맞지 않은 종자와 농약을 사용하게 했고 과일나무 가지를 자르지 않아도 되는데도 자르게 해 과일이 열리지 않게 했다”는 등 갖가지 죄목이 열거됐다.

당시 평양 시민들은 서관히 비서의 죽음을 보고 충격과 함께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북한의 농업정책이 그 한 사람의 비행으로 말미암아 망가졌다는 게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관히 공개 처형은 북한 식량난을 서관히와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김정일의 ‘꼼수’에 불과한 것이었다.

식량난으로 백만 명 이상이 아사한 1996년 12월 김정일은 ‘김일성대 연설문’에서 “식량문제 때문에 나라가 큰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중략). 지금처럼 정세가 복잡한 때에 내가 경제실무사업까지 맡아보면서 걸린 문제들을 다 풀어줄 수는 없습니다. 내가 혼자서 당과 군대를 비롯한 중요부문을 틀어쥐어야지 경제실무사업까지 맡아보면 혁명과 건설에 돌이킬 수 없는 후과를 미칠 수 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생전에 나에게 절대로 경제사업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고 했다.

96년 이후 경제 팽개치고 선군정치 ‘올인’

식량난의 책임은 자신에게 없으며 더 이상 경제 관여하지 않고 정치를 틀어쥐겠으니 당 책임 비서들이 경제를 알아서들 하라는 내용이다. 이후 김정일은 정치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선군(先軍)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선군 정치는 10년 동안 북한 주민들을 빌어먹게 만드는 독(毒)이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중∙장기 경제운용 계획을 최종 발표하는 경제민생점검회의를 주재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이 회의는 총리가 주재하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경제가 나쁘고 회복될 기미도 없으니 다시 정치 대통령으로 정권 구하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올 초만 해도 노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연두기자회견에서 국정과제 1순위를 ‘경제’로 두고 정치 대통령에서 탈피하겠다고 말했었다.

남북한 정치권력, 무책임과 꼼수는 닮은 꼴

국민이 여소야대를 선택했다면 대통령은 야당과 함께하는 국정운영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국정 난맥의 책임을 타인이나 외부에 전가하거나 내각제에서 흔히 등장하는 연정 운운하며 상황을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난 총선 이후 여당이 국회 과반수를 점한 상황에서 경제와 부동산, 노사관계는 얼마나 안정돼있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자고 나면 말이 바뀌고 기득권 세력, 친미세력, 야당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대통령을 국민들은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의 최근 행보는 김정일이 식량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어찌 그리 닮았는지 모르겠다. 김정일은 그 당시에 무책임하고 ‘꼼수’에 능한 지도자의 전형을 보여줬다. 솔직하고 책임 있는 최고 지도자, ‘꼼수’보다는 정도를 걷는 지도자가 남과 북 모두에 절실하다.

신주현 취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