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 붕괴, 軍이 바뀌어야 가능”

▲심신복 탈북군인협회 회장. ⓒ데일리엔케이

지난 7일 군인 출신 탈북자 45인이 모인 ‘탈북군인협회’(회장 심신복)가 출범했다. 군인 출신 탈북자 단체는 지난 2005년에 결성된 ‘자유북한군인연합’(회장 임천용)에 이어 두 번째다.

11일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심신복 회장과 인터뷰를 통해 협회 출범 동기와 활동계획을 들었다. 심 회장은 “인민군 출신 탈북자들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아직 이들을 대표하고 이끌 수 있는 단체가 없다”며 협회 창립 배경을 설명했다.

30년 군인 출신인 심 회장은 인민군의 변화가 김정일 체제 붕괴의 핵심이라고 단언했다.

심 회장은 “북한 문제는 궁극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붕괴 문제와 관련돼 있다”며 “김정일 정권이 아직 유지되는 것은 김정일을 위한 150만 인민군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현재 최전선 1제대(휴전선 20km)에 배치된 1, 2, 4, 5군단 군인들을 대상으로 에드벌룬으로 삐라(전단)를 뿌리는 일과 북∙중 국경지역 인민군을 대상으로 북한사회에 대한 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심 회장은 “협회 내 북한군 정보에 능통하고 현재도 북한 인민군과 연계하고 있는 회원이 있다”면서 “북한군인들에 대한 정보를 한국민에게 알리는데 주력하겠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는 탈북자 단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은 상황이다. 특히 군인출신 탈북자 단체가 이미 결성된 상황에서 출범한 ‘탈북군인협회’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탈북자들도 있다.

심 회장은 “‘탈북군인협회’ 출범이 이미 결성된 단체와 연대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남한에 각각의 정당, 사회단체가 활동하는 것과 같은 시각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양방어사령부 정치부에서 종합지도원 중좌(한국군 중령에 해당)로 근무하다 98년 탈북, 그해 10월에 한국에 입국한 심 회장은 현재 목회활동과 협회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평양방어사령부는 김정일을 군사적으로 보위하는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부대이다. 김정일의 군부 핵심측근이 주로 평양방어사령관이 된다. 심 회장은 평양방어사령부 당위원회 소속으로 조직, 선전, 교육 등을 담당했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노동당원이었다는 ‘빽’이 있어 평양방어사령부에서 근무할 수 있었다는 그는 당시 김정일의 복잡한 여자관계를 비롯한 사생활을 듣게 됐고, 기독교를 접하면서 김정일에 대한 환멸과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탈북했다.

[심신복 회장과의 일문일답]

-탈북동기와 북한에서의 생활은?

“북한 인민군에서 30년간 복무했다. 평양방어사령부 정치부에서 종합지도원 중좌로 근무하다 중국을 거쳐 98년 10월 대한민국으로 입국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노동당원이었다는 ‘빽’이 있어 평양방어사령부에서 일했다. 상급간부들과의 술자리에서 김정일의 정치 야욕이나 사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이후부터 김정일과 북한 사회에 환멸을 가졌다.

기독교에 대한 영향도 컸다. 역설적인 말이겠지만, 국가보위부원들이 성경과 하나님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 찬송가 어떤 몇 장이 어떤 노래인가를 알고 있을 정도다. 국가보위부원들 중 성경을 읽는 사람들을 처벌하면서 성경과 하나님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친구도 보위부에 근무하면서 성경을 접했다. 그를 통해 성경을 건네 받은 후 성경을 읽고, 제주아시아방송(현 제주극동방송)을 듣고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다.”

-당시 김정일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면.

“김정일은 어릴 때부터 1인자가 되기 위해 치밀했던 사람이다. 남한에도 ‘코드정치’라는 말이 있지만, 북한식 코드정치는 곁가지를 짓밟는 일이라, 남한과는 비교하기 힘들다. 김정일은 필요한 간부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집, 승용차 등 명절마다 선물을 보내 포섭했다. 북한 내 ‘뇌물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 김정일이다.

군 복무 당시 김정일의 복잡한 여자관계와 같은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지 ‘김정일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정도의 불만 수준이었다.”

-한국에 입국한 지 10년째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북한에서의 10년과 비교하면 한순간처럼 느껴진다. 나는 북에서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선교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탈북한 사람이다. 그래서 대성공사에서 1년을 보냈고 파트타임 전도사로 일하면서 대학원 3년을 보냈다. 이후 전임전도사로 2년을 지냈고 2005년 10월에 안수를 받아 일산에서 개척교회를 설립, 목회활동을 시작한 것이 남한에서의 10년이다.”

-탈북자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현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직 탈북자 단체들을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연합단체가 없는 상황이다. 사명감이 부족한 단체들도 있다. ‘탈북군인협회’ 출범이 이미 결성된 단체와 연대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남한에 각각의 정당, 사회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과 같은 시각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탈북군인단체 결성 필요성은 4년 전부터 생각했고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결성했다. 북한 문제 해결은 근원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붕괴라고 생각한다.”

-‘탈북군인협회’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인민군 출신 탈북자 45명이 모여 단체를 만들었다. 조직을 잘 구성한 다음 단체를 출범해야 했지만, 현재로서는 대표와 사무국장 체제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회원들의 활동력을 높여 팀별로 운영할 계획이다.”

-2005년에 결성된 ‘자유북한군인연합’과의 협력관계를 갖게 되나?

“자유북한군인연합과 협력해서 일하면 좋겠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탈북군인협회와 자유북한군인연합은 일하는 방법이 달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 특히 보여주기 사업, 이벤트성 사업 등은 지양해야 한다. ‘북한 보급창고 등을 까고 나오자’ 식의 선동적이고 과격한 활동이나 ‘5∙18 광주에 북한특수부대가 투입되었다’는 주장 등도 현실과 맞지 않다.”

-세부적인 활동 계획은?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김정일만을 위해 교육받은 150만 인민군이 있기 때문이다. 군인 출신 탈북자 중 군사적으로 중요한 정보자료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지금도 과거에 같이 복무했던 인민군과 연락을 취하며 상부상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단체가 군인 조직인 만큼 북한군에 대한 종합된 정보와 인민군의 정치사상적 무장상태 등을 국군과 한국민에게 알리는 일을 우선하려 한다.

더불어 인민군을 상대로 민주주의 의식을 갖게 하는 일을 진행하려고 한다. 지금은 최전선 1제대(휴전선 20km)에 배치된 1, 2, 4, 5군단 군인들을 대상으로 에드벌룬으로 삐라(전단)를 뿌리는 일을 할 계획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북∙중 국경지역 인민군들과 접촉, 북한사회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계획도 준비 중이다.”

-이명박 정부의 탈북자 정책과 대북정책에 대해 평가해달라.

“10년간 좌파정부는 본질적으로 북한정부와 같은 의식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탈북자 정책이 지난 정부보다는 낫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에 비해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대북정책에서는 정부의 노력과 관계없이 북한당국이 응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비관적이다. 다만 탈북자 단체들의 입장이 전달될 여건은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햇볕정책은 햇볕을 통해 변화를 이끌겠다는 것인데, 김정일은 ‘우리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남한정부의 햇볕정책은 김정일과 ‘보기에 좋은 그림 하나 만들자’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실제 북한이 하자는 대로 끌려만 다녔지 변화를 주도하지 못했다. 국민들에게 비치는 모습에만 급급해 대화하고 회담하는 모습만 연출했다.

최근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무조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북한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남한이 아무리 줘도 못 먹는 사람은 못 먹고, 주지 않아도 먹는 사람은 먹는 게 북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