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주의적 통일 시도’ 개성공단 중단 사태의 교훈

I. 기능주의적 남북접근의 실패


개성공단에 진출한 한국 측 회사직원이 전원 철수하였다. 전광석화와 같은 박근혜 정부의 결단과 실행이 마치 9회 초 0:0에서 ‘최종통보와 중대조치’라는 내야 강습 안타로 잔루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인 것과 흡사하다. 한국 정부가 지난 15년간의 위선적 대북관용정책을 일거에 뒤집은 것이다. 이제 9회 말 김정은이 안타성 ‘중대조치’를 취할 수 있을 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개성공단 철수사태로부터 앞으로의 대북관계 및 통일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개성공단이 실패하였다는 사실은 단순히 남북경제교류의 상징적 사업의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표현처럼 ‘작은 통일’의 시도가 실패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대중 정권에 의해 기획되고 2004년 12월 노무현 정권이 시작한 개성공단은 한국의 좌파에게는 ‘남북 간의 활발한 경제교류가 남북 간의 신뢰 증진과 호혜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며, 이것이 남북연합이나 남북연방의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다’라는 6·15선언의 실천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한국좌파에게 개성공단의 확대와 지속은 결정적인 정치적 가치를 갖는다.


이처럼 ‘서로 다른 체제 간의 물적, 인적 교류의 확대가 궁극적으로 체제 차이를 넘어서는 신뢰를 갖고 와서 통일이나 통합에 이를 것’이라는 신념을 우리는 ‘기능주의적 접근’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개성공단사업의 중단은 남북 간에 기능주의적 접근이 실패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실패의 이유는 둘 중의 하나이다. 하나는 데일리NK의 보도처럼 김정은 정권은 초코파이로 상징되는 ‘개성공단의 성공’으로 30만 개성주민 나아가 북한의 다른 지역의 주민이 ‘남조선과 미 제국주의의 전쟁위협’이라는 선전에 넘어가지 않게 되자, 매년 9,000만 달러의 외화와 30만 명의 의식주 해결 그리고 최소한도의 남북 간의 신뢰관계 대신에 애송이 수령의 체면치레와 체제유지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증거들이 존재한다. 이럴 경우 김정은 정권은 제 발등을 도끼로 찍는 격이지만 나름대로 냉철한 판단을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화폐개혁, 평양의 놀이동산과 고급 아파트 건설, 자본주의 및 섹시 코드로 도배한 신년 음악회, 미사일 발사 및 3차 핵실험, 미국의 농구스타 로드맨 초청 등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김정은의 행동방식 즉 ‘주변 상황이나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고 일단 지르고 보자’는 조급주의와 맹동주의가 이유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의 직원들을 인질로 삼지 않고 개성공단 폐쇄라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저지르고 보자는 와중에서도 김정은 정권이 개성공단에 일말의 미련을 갖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만든다.


만일 개성공단의 실패가 수령체제의 유지와 관련이 있다면, ‘남북 간 최소한의 신뢰에 기반을 두어 최대한의 신뢰 구축을 목표’로 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이 성공하려면 어느 시점에서는 수령체제의 철폐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능주의는 체제 차이를 넘어서지 못하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만일 개성공단의 실패가 김정은의 맹동주의에 있다면 북한 지배층이 김정은을 제거해야 남북 간의 기능주의적 접근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지르고 보자는 행태를 스스로 교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Ⅱ. 로드맵 통일론의 불가능성


지난 대선에 문재인 후보는 ‘남북경제연합-한미군사동맹조정(해체)-남북연합’이라는 통일론을 내세우면서 임기 내에 이러한 남북연합의 기초를 놓으면, 북한은 핵보유의 필요성을 가질 수 없으므로 핵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이른바 ‘출구전략’을 내세웠다. 문재인 후보의 통일론, 즉 한국좌파의 분단체제 극복론은 바로 기능주의 접근의 한 방식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보유국 명문화와 개성공단의 중단사태를 놓고 볼 때, 한국좌파의 기능주의적 대북접근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도 명명백백해졌다. 그것은 핵위협에 동맹국 없이 노출된, 그리고 수령체제를 전혀 바꿀 의사도 바꿀 이유도 없는 북한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불과 123개의 업체가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직원 철수 결정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에 투자 규모가 커질 경우 북한 노동자의 저임금에 중독된 한국경제가 북한의 협박에 어떤 방어책도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기능주의적 대북 접근은 한국의 좌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기능주의적 접근에 속한다. 나아가 ‘교류확대를 통한 상호신뢰-국가연합(연방)-통일’을 가정하는 모든 종류의 로드맵 통일론이 사실은 기능주의적 접근에 속하며, 한국의 공식적인 ‘한민족 공동체 통일론’도 그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은 바로 한민족 공동체 통일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평화적으로 분단을 관리하는 것이 최상의 현실정책이지만 미래의 통일의 꿈을 잃지 않기 위하여 각종 로드맵 통일론을 만들어 왔다. 예를 들어 ‘한민족 공동체 통일론’은 북한정권의 현재 혹은 미래의 선의(善意) 및 이런 북한의 선의를 바탕으로 한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북한이 궁극적으로 수령체제를 포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기능주의적 접근은 선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력이 있고, 또 정치·윤리적 명분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북한정권의 현실을 볼 때 참담한 국가실패라는 역사적 과오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한국 좌파 스스로 ‘작은 통일’이라고 부르는 기능주의적 접근은 개성공단이라는 소규모의 실험에서 실패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0·4선언 이행이나 남북경제연합과 같은 대규모 실험이 성공한다고 믿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이다.


Ⅲ.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불가피성


다른 한편 한국의 우파는 북한 지배층이 수령체제를 포기해야 남북 간의 신뢰관계 구축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어쩌면 수령체제 포기 전제론은 ‘사상·이념·체제를 넘어 통일을 추구한다’는 7·4 공동성명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령체제의 폐기를 요구하는 한국 우파의 통일론은 남북이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통일을 논의한다면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의 체제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화의 평등성’을 침해하여 정치·윤리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북한의 선의를 믿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한국 우파의 반(反)기능주의적 통일론은 ‘강경하다’ 혹은 ‘오만하다’고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수령체제의 포기를 통일론의 전제로 삼는 것은 부자 한국이 가난한 북한에게 체제전환을 협박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남북이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통일을 시도한다면, 남북의 대표는 평등한 대화를 해야 할 것이다. 한국도 한국의 입장을 밝힐 수 있고 북한도 북한의 입장을 밝힐 수 있으며, 나아가 통일과정과 통일체제의 결정과정도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강압해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 한반도 전체 주민 다수가 자유롭고 평등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인민민주주의를 주장하든 수령체제를 옹호하든 김정은 정권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독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남북이 통일을 평화적으로 논하는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로 평등한 대화를 하며, 대화의 참여자를 강압하지 않고 다수의 의지에 따라 결정을 하는 방식’을 우리는 바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부른다. 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구현되는 정치체제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라고 부른다. 이 점은 독일헌법 재판소가 1952년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의미를 보아도 명백하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모든 자의적 통치를 배제하며, 다수의 의지와, 자유와 평등에 따른 인민의 자결권에 근거하여 법치국가의 통치질서를 형성하는 질서를 의미한다.


여기서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결정하는 대화 방식이 통일된 한반도에서 의사표현과 결정방식을 규정하는 정치체제와 동일해야 함은 남북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한 명백하다. 왜냐하면 남북통일이라는 가장 어려운 갈등상황을 평등한 대화를 통하여 인민의 자발적 의지를 결집하여 해결하였다면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덜 중요하고 덜 힘든 여러 의사결정을 동일한 방식으로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자유민주주의는 사상의 자유 또는 평등한 대화를 지향하는 사회라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핵심가치이며, 모든 종류의 사상과 이념이 자유롭게 개진되고 그 정당성을 증명할 수 있는 틀(framework), 즉 보편적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지 않는 한 김정은의 조선노동당도 이정희의 통합진보당처럼 여러 정당의 하나로 활동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한국의 우파가 ‘북한지배층이 수령체제를 포기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해야 비로소 남북 간의 신뢰 구축이 가능하다’고 보는 이유는 강경이나 오만이 아니라 실은 매우 논리적이고 평화 지향적이다. 왜냐하면 오로지 이 방식만이 어느 일방의 무력통일이나 자체 붕괴를 통한 통일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한국이 전쟁을 통한 통일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지배층이 수령체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통일의 가능성은 북한의 자체 붕괴 이외에는 없다. 같은 이유로 수령체제를 극복하지 않는 한 어떤 로드맵 통일론도 성공할 수 없다. 이것이 기능주의 접근에 의한 통일방식 실험인 개성공단의 중단사태가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