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영변 핵시설 곡물 말리기…봄은 보리, 가을은 옥수수

38노스와 영변 내 미확인 물질에 대해 나눈 농사 문답 놀이

영변 핵 시설 내 공터에 미확인 물질(노란색)을 펼쳐놓고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사진=38노스(2021.03.12)

미국의 인터넷 대북 전문 매체인 38노스에서는 지난 3월 12일 자 기사에서 3월 10일 촬영한 위성영상으로 북한의 영변 핵시설 내에서 노란색의 미확인 물질(Unidentified yellow substance)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위 사진). 평안북도 영변 우라늄농축시설 건물 사이 공터에서 정체불명의 노란 물질이 도로에 길게 펼쳐진 가운데 사람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38노스는, “이러한 모습이 곡물을 널어 말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영상이 촬영된 시기가 3월이라서 즉, 농작물 수확기가 아니라서 이 물질의 정확한 성질이 무엇인지는 불분명(unclear)하다”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38노스에서 2013년 6월 7일 게재된 또 다른 기사에서도 영변에서 곡물을 햇볕에 말리는 것으로 보이는 노란색 물질이 도로상에 길게 펼쳐져 있다고 언급하고, 옥수수를 건조하는 모습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38노스 분석관들은 당시 위성영상이 4월에 촬영된 점에 주목하면서, “옥수수는 보통 봄이 아니라 가을에 수확하고 말리는 것”이라며 어리둥절하다는 느낌을 남겼다.

38노스의 과거 기사를 좀 더 찾아보면, 2013년 3월 29일과 5월 16일 자에서도 봄에 영변 핵 센터에서 알려지지 않은 미확인 곡물을 건조하는 것이 관측되었는데, 거듭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2012년에도 영변 지역에서 9월 5일과 21일 그리고 11월 1일 촬영한 위성영상에서 각기 곡식을 널어 말리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38노스 분석관들은 이것을 가을에 옥수수를 수확한 다음 널어 말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시 2013년 기사에서는, 옥수수 수확기가 아닌 봄철에 옥수수를 건조하는 것은 계절적으로 이치에 안 맞는다고 스스로 인정하면서, “아마도 이는 2012년 8~9월에 이 지역을 강타한 태풍으로 건조 시기를 놓쳤고, 곧이어 긴 겨울이 닥치자 옥수수를 그냥 두었다가 2013년 봄에 햇볕이 좋아지니까 다시 널어 말리는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시골 출신인 필자는 어설픈 지식을 바탕으로 볼 때, 봄에 곡물을 길에 말리는 것은 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인터넷 등을 통하여 농업 일반지식을 찾아보고, 농사 경험과 지식을 겸비한 지인에게 문의하는 등 상황을 좀 더 파악한 다음 아래와 같이 종합하였다.

『봄철에 밭작물을 수확하여 햇볕에 말리는 것은 주로 보리나 밀의 경우이고, 옥수수는 가을에 수확하여 건조한다. 구체적인 농사 정보는 다음과 같다.

– 곡물을 햇볕에 널어 말리는 것은 수분을 제거하여 즉, 건조시켜서 발아(싹이 트는 것)를 막고 장기간 보관하기 위함이며,

– 옥수수는 여름작물로 8~9월에 수확을 하는데, 말리지 않고 그대로 두면 싹이 나고 결국 장기보관이 곤란하게 된다.

– 반면, 밀과 보리는 겨울작물로 가을에 파종하여 이듬해 봄에 수확하며, 이것을 겨울 밀·보리라고 한다. 한편, 따뜻한 지방에서는 이른 봄에 밀·보리를 파종하여 늦봄~초여름에 거두기도 하는데, 이를 봄밀 또는 봄보리라고 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영변에서 봄에 곡물을 수확하여 널어 말리는 것은 옥수수가 아니고 밀이나 보리일 것으로 귀결이 되는데, 컬러 위성영상에서 보면, 보리나 옥수수나 색상은 연한 노란색 또는 연한 주황색으로 서로 간에 비슷해서 구분이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위와 같은 농사 정보를 정리해서 38노스 측에 이메일을 보냈고, “영변 핵시설 내 귀측이 미확인 노란 물질이라고 한 것은 봄철에는 보리를 말리는 것이고, 가을에는 옥수수를 널어 말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필자의 의견을 일부 인터넷 자료와 함께 제시하였다.

며칠 후 38노스에서 보내온 회신에는 “그렇다면, ❶ 이전해 가을에 수확한 옥수수를 기상여건에 따라서 (햇볕이 충분치 못해서) 겨울이 지난 다음 다시 꺼내서 건조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는 것과 “❷ 영변에서 따로 농사짓는 장소가 있는가? 있다면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보내왔다. 이에 대해, “❶ 수분이 덜 빠진 옥수수는 장기보관이 곤란해서 품질에 이상이 생겨 안 좋고, ❷ 영변에서 따로 농사짓는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아마도 시설 내 자투리땅 공터를 자체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 식량 배급이 제대로 안 되고 형편이 어려우니까, 궁여지책으로 자급자족 및 자력갱생을 위하여 밭농사를 짓는 것으로 본다”고 답신을 보냈다. 이후 38노스 측으로부터 궁금증을 바로 잡아줘서 고맙다는 회신을 받으면서 한미 간 이메일로 교류한 짧은 농사 문답놀이가 마무리되었다.

한국에서도 봄~초여름이면 보리를 수확한 다음 아래 사진과 같이 햇볕 좋은 날 집 앞 공터나 도로변에 널어 말리기도 한다.

전남 광양에서 (왼쪽) 마을 앞 공터에, (오른쪽) 산업도로 변에서 보리 말리기에 한창이다. /사진=연합(2004.06.02)

따라서, 영변 핵 시설 내에서 도로상에 노란색으로 길게 펼쳐서 곡물을 말리는 것은 봄에는 보리를, 가을에는 옥수수를 말리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아래 사진 참조).

영변 핵시설 내 5MWe 원자로 인근 도로상에서 곡물을 말리고 있는데 (왼쪽) 봄에는 보리를, (오른쪽) 가을에는 옥수수를 말리는 모습이다. /사진=구글어스

이제는, 38노스 분석관들이 봄·가을에 도로나 건물 지붕에 널어 말리는 노란 물체를 보고 무엇이라고 판독해서 보고서를 쓸 것인지 지켜볼 일이고, 한편으로는 필자의 의견에 혹시 어떤 오류는 없었는지 조심스레 염려해 본다.

지난 시절 우리나라에서는 보리를 대표적인 구황작물로 여겼다. 식량 사정이 어려울 때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양식이 바닥을 드러내게 되는데, 그러면 가을에 쌀이나 옥수수를 추수할 때까지 긴 기간을 보리를 심고 거두어 근근이 굶주림을 견뎌야만 했다. 이때, 봄~여름에 보리를 수확하여 배고픔을 덜게 되는데, 햇보리가 수확될 때까지 힘든 이 기간을 보릿고개라고 불렀다. 감자도 대표적인 구황작물로서 보통 이른 봄에 심어서 여름에 수확을 한다.

한편, 남한은 쌀이 주식인 반면 북한은 옥수수와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데, 산이 많고 경지면적도 적고 기후도 벼농사에 양호한 편이 아닌 북한에서는 쌀농사가 쉽지 않다. 그래서 쌀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끝으로, 북한의 여전히 녹록지 않은 식량사정을 감안할 때, 올봄에는 북한에 기상여건이 좋아서 구황작물인 보리나 감자나마 풍년을 이루고 북한 주민들이 지속되는 유엔 경제제재와 엄중한 코로나 시대에도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면해보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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