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 영상물 유포 평양시 주민 공개총살…반사회주의 통제 고삐

3월 초 사동구역 사격장서 공개처형 집행…소식통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시범껨 차원"

옥류교
평양 옥류교. / 사진=조선의 오늘 홈페이지캡처

북한이 지난해 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고 한국의 문화콘텐츠 유입·유포 행위에 대한 통제와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평양에서 불법 영상물을 유통한 주민 4명이 공개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11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2일 사동구역 대원리사격장에서 평양시 전체 인민반장들과 인근 지역의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남성 3명과 여성 1명 등 총 4명의 주민에 대한 공개총살이 집행됐다.

처형된 이들은 형제산구역 하당동에 살던 주민들로, 50대 초반의 장모 씨와 40대 후반인 그의 아내가 주도해 한국 영화와 예능·가요 프로그램들을 SD카드에 담아 전국에 유포한 혐의로 붙잡혔다.

형제산구역 하당동에는 일명 ‘가대기담배’라 불리는 담배 모조품을 만들어 파는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장 씨 부부 역시 이곳에 살며 담배공장과의 뒷거래를 통해 담배씨를 받고 국경 쪽에서는 수입 담배종이를 밀수해와 수년간 전문적으로 담배 모조품을 생산·판매하는 일을 해왔다.

모조품은 담배공장에서 생산된 정품 담배와 생김새, 포장까지 모두 똑같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이라 지방에서 나름대로 수요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부터 장 씨 부부가 단층에서 2층으로 집을 고쳐 올리고 돈을 얹어 이사를 보내면서까지 옆집을 사들여 규모를 넓히는가 하면, 집 주변에 생산공정과 장비가 갖춰진 그럴듯한 공장을 꾸려 30~40명의 사람을 쓰기도 해 동네 주민들로부터 의아쩍은 눈초리를 받았다.

주변 주민들은 담배 모조품을 생산해 판매한다고 해도 큰돈을 만지기가 어려울 텐데 수입 대 지출이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장 씨 부부의 형편이 갑자기 나아진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장 씨 부부가 생산한 담배 모조품을 지방에 실어나르던 벌이버스 기사 부부 역시 이를 수상쩍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특히 장 씨 부부가 운임은 운임대로 주면서 꼭 한 상자를 더 얹어 보내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이에 이 부부는 지난 1월 상자를 바꿔치기한 뒤 내용물을 살폈고, 그중 담배 두 보루에 SD카드가 가득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SD카드에 각종 한국 영상물이 담겨있는 것까지 확인한 이들이 결국 장 씨 부부를 보위부에 신고하면서 이번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게 소식통의 말이다.

소식통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만들어진 뒤에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소탕 연합지휘부’가 생겨났고, 2월 초부터는 각 도·직할시·특별시 지휘부들이 활동을 해왔다”면서 “장 씨 부부 사건은 보위부에서 평양시 지휘부로 이관됐으며 이후 장 씨 부부에게서 돈을 받고 SD카드를 복사한 30대 일공 2명도 붙잡혔다”고 설명했다.

실제 가택수색 당시 장 씨 부부의 집에서는 다량의 중국산 SD카드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평양시 지휘부 성원들은 장 씨 부부에게 앞 선을 대라고 추궁했으나, 이들은 국경을 통해 담배종이를 들여오면서 지난해 8월 이후 두 차례 USB가 여러 개 들어있는 상자를 받았을 뿐 누가 넣었는지는 전혀 모른다고 주장했다는 전언이다.

그러면서 장 씨 부부는 호기심에 열어본 USB에 지금껏 보지 못한 영상들이 들어있었고, 돈이 되겠다고 생각해 SD카드에 옮겨 하당 장마당에 내다 팔아봤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그 사람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전국에 뿌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번 사건은 1호 보고로 올라갔고, 이들을 민족반역자로 취급하라는 지시가 내려져 처형이 집행됐다”며 “예심은 보통 6개월이 걸리지만, 시범껨 차원에서 속전속결로 마무리 짓고 공개총살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앞서 본보가 입수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설명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법 제27조에 ‘남조선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를 대량 유입·유포한 경우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단독] “南영상물, 대량 유입·유포 시 사형”…대남 적개심 노골화)

한편 장 씨 부부의 10대 자녀들은 사회안전성이 관리하는 평안남도 북창 18호 관리소로 보내졌으며, 평양에 거주하고 있던 처형자들의 직계가족들은 모두 지방으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