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김정은 10년, 변화는 어디 가고 통제의 고삐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 10일 열린 제8차 노동당 대회 6일 차 회의에서 당 ‘총비서’로 추대됐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1일 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제8차 노동당 대회를 전후한 북한의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분위기를 요약하자면 ‘자력갱생 속 통제 강화’로 지칭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달 당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조국과 인민, 후대들의 운명을 걸고 …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적 행위들을 무자비하게 억제소멸”할 것을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채택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서는 남한 영상물을 보기만 해도 최대 15년의 노동교화형, 유포할 경우에는 최대 사형까지 처벌이 강화됐다.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과 직업총동맹, 농업근로자동맹, 사회주의여성동맹 등 북한의 4대 근로단체는 이달 초 일제히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열고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도 높게 벌일 것을 다짐했다. 외래어에 오염된 남한은 ‘언어오물장’으로 변했다며(우리민족끼리, 지난 9일) ‘평양문화어’를 적극 살려쓰라(노동신문, 지난 7일)는 내부 생활문화 단속도 이뤄지고 있다. 외부에 눈 돌리지 말고 북한 것 지키라는 독려이자 압박이다.

경제 부문에서도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를 강조하며 당국의 통제 밖에서 자생해왔던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양상이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며 ‘국가적인 자력갱생, 계획적인 자력갱생, 과학적인 자력갱생’을 내세웠는데, 북한의 의중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달 11일 이를 각자도생식의 자력갱생이 아니라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 밑에 계획적으로 주도 세밀하게 진행하는 중앙집권적인 자력갱생”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자력갱생을 추진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가운데 이뤄질 것이라는 뜻이다.

집권 초 변화 추진하던 김정은

김정은 총비서가 집권을 한 것은 2011년 12월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면서부터다. 올해가 2021년이니 벌써 10년이 다 됐다.

집권 이후 김정은 총비서는 여러모로 아버지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은둔의 지도자였던 김정일과는 달리 대중연설을 시작했고, 공개리에 부인을 대동하고 현지지도에 나서기도 했다. 기업의 자율적 경영을 강화하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나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이 얻어갈 수 있는 자본주의적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는 등 실용적인 리더십도 보였다.

개성이나 신의주 같은 기존 경제특구 외에 북한 전역에 걸쳐 22개의 경제개발구 조성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북한판 걸그룹이라는 모란봉악단의 등장은 김정은 시대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대변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개혁 개방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김정은 체제는 ‘변화’보다는 ‘통제’에 무게중심이 가 있다. 과거로 돌아가는 듯도 보인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긴 하지만, 코로나19가 문제되기 전인 지난해 초부터 북한은 이미 미국과의 정면돌파전을 선언했다. 올해 초 제8차 당대회 때에도 북한은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는 발전시키겠다면서도 미국을 ‘최대의 주적’으로 지칭하며 대미관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10년 집권의 경험이 통제강화로?

북한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데에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노이까지 60시간 넘는 기차를 타고 가서도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김 총비서가 대외관계에 더 소극적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하노이 결렬만으로 북한의 지금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노이에서 회담이 결렬됐더라도 북한이 변화와 개방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있었더라면 상황 변화를 가져 올 시간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집권한 김정은 총비서가 자력갱생과 통제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권력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일성 일가가 극도로 우상화된 왕조적 전체주의 세습체제에서 외부와의 적극적인 교류는 권력 기반을 흔들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외부 정보가 유입되면 김일성 체제의 허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뭔가 많은 변화가 가능하다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절대적인 권력을 조금도 내려놓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통제와 폐쇄체제 유지가 가장 안전한 권력유지 방법이라는 것을 지난 10년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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