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부자상인’들이 늘고있다

▲ 평양시내 과일상인(제공:연합뉴스)

장사하는 북한주민들의 직종과 자본규모가 다양해지고 있다. 90년대 후반, ‘장마당 국수장사’가 시작된 이래 대형식당, 노래방, 민박업 등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과 무역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소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제도적으로 ‘합법화’된 것은 아니지만 북한당국은 돈을 바치고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경영권과 개인 수익을 적극 보장해주고 있다. 또한 적당한 ‘애국사업’(개인이 돈이나 현물로 국가에 기부하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면 훨씬 쉽게 큰사업을 벌일 수 있다고 한다.

중국 훈춘에서 만난 김철홍(가명∙41세∙함남출신)씨는 함경남도 A시에서 꽤 큰 손으로 통하고 있다. 그는 종업원이 8명이나 있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노래방과 민박업도 겸하고 있다. 김씨는 원래 000기업소의 관리원이었는데 평소 A시 대외경제위원회의 일꾼들과 좋은 관계를 활용하여 중국에서 중고 타이어 40개를 구입, 당국에 바치고 00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너도 나도 장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국가에서는 배급도 못주지, 농장원들이 아니면 뙈기밭 한쪽도 얻기 힘들지 하니까 국수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돈을 모은 사람들이 중국에서 옷이나 경공업제품들을 들여와 팔며 살림을 키워 간 것이다. 나도 기업소가 멈추게 되자 중국의 친척들의 도움으로 옷장사부터 시작했다.”

김씨는 요즘 북한에서는 돈만 있으면 뭐든 다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요즘엔 장마당이나 역전 주변에 숙식도 제공하고 아이들도 봐주고 짐도 보관하는 민박집들이 많아졌다. 그뿐만 아니라 음식업, 공업품 소매업, 수산물 매매 등 할 수 있는 것은 다한다. 원래는 장사를 못하게 했는데, 요즘은 개인들이 돈을 내서 운영한다고 하면 심지어 국영기업소들의 한 분야까지 내주는 형편이다. 이윤이 나면 이윤을 또 바치니까 지역에 따라서는 국가에서 권장하기도 한다.”

중국 옌지(延吉)에서 만난 성진남씨(가명∙33세∙함북출신)도 달라진 북한의 모습을 설명하였다.

“요즘 조선에서 잘되는 사람들은 일본이나 중국에 친척이 있어서 돈을 모아올 수 있는 사람들이다. 청진에는 ‘낙타봉식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일본 귀국자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예전에는 국가에서 귀국자들을 별로 대우해주지 않았는데, 요즘은 조총련쪽에서 돈이 올라오지 않으니까 민단쪽 귀국자들에 대한 대우가 많이 좋아졌다. 낙타봉식당의 책임자는 일본 친척들에게 돈을 모아 인민위원회에 꽤 많이 바쳤다고 한다.”

낙타봉 식당은 청진에서 꽤 유명한 식당으로 중식, 일식뿐만 아니라 타조불고기 같은 북한식 요리까지 서비스 한다. 조선돈 뿐만 아니라 달러와 위엔화까지 통용된다고 한다.

1월 26일 중국 룽징(龍井)에서 만난 탈북자 최세훈씨(가명∙49세∙자강도출신)는 개인들의 상업활동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통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살기 바쁘다. 장사를 한다고 해봐야 대부분은 먹는 장사다. 없는 사람들이야 사실 굶어 죽지만 않을 뿐이지 예전이랑 똑같다. 하지만 있는 사람들 내부에서는 자꾸 변화가 온다. 돈을 모으는 사람들이 자꾸 더 큰 장사를 벌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당일꾼이나 간부들이 돈 있는 사람들에게 아쉬워졌다. 물론 아직까지 그 권위가 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당간부에게 무조건 굽신굽신 했다면, 이제는 국가일꾼들이 돈 있는 사람들을 먼저 찾는 경우도 많아 졌다.”

아직은 일부의 특별한 사례지만, 그저 단순한 생존 방식이었던 ‘장사’를 부(富)와 권력에 닿는 지름길이라고 느끼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아래서부터 불어오는 경제개혁의 바람에 대해 북한당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고 볼 일이다.

중국 옌지(延吉) = 김영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