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심려 말씀’에 전국 노인 부랑자 조사 사업 나서

양로원 시설 개보수도 함께 진행…주민들 "취지는 좋지만, 노인 부양 강제하냐" 문제 제기

평안남도 양로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월 20일 평안남도에서 양로원을 새로 일떠세웠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 당국이 전국을 떠돌며 걸식하는 60세 이상의 노인들을 찾아내 주민등록 조사에 나서고, 돌볼 가족이 없는 경우에 한해 양로원에 들여보내는 사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19일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중앙당 선전선동부는 ‘보호자 없고, 버려지고, 쫓겨나고, 방랑하는 노인들을 모두 찾아내 국가가 보살피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침에 따라 각 도당과 인민위원회, 사법기관들에 년로보장(정년퇴직) 나이의 60세 이상 노인 부랑자를 파악해 국가시설인 양로원에 들여보내기 위한 조직적인 사업을 진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18일부터 전국 13개 시·도(특별·직할시 4곳, 도 9곳)에는 이른바 ‘사회주의 본성과 문화, 도덕적인 면모를 일신시켜 나가기 위한’ 목적으로 유랑걸식하는 노인들을 지역마다 찾아내 등록하는 사업을 맡을 책임지도분과가 조직됐다.

시·도별 책임지도분과는 도당 선전부와 도 인민위원회 사회보장관리과, 도 인민보안국 주민등록과 일꾼 등 10여 명으로 구성됐으며, 이들은 각 도·시·군당과 인민위원회, 사법기관, 인민반 동사무소 등과 협력해 주민등록상 독거노인이거나 사망신고가 안 된 60세 이상의 노인들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해당 사업 기간은 1년으로, 시·도별 책임지도분과는 내년 5월까지 사업을 마감 짓고 결과물을 중앙당에 보고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업은 지난 2월 초 ‘세계적인 관광 국가로 도약하려는 당의 의도에 반하게 전국에 특히 노인 유랑걸식자들이 많아진 것은 효도를 제일의 미풍양속으로 여기는 우리식 사회주의 민족적 본성에 어긋나는 비도덕적 현상으로, 외국인이나 세계의 진보적 인민들에게 사회주의 영상을 흐릴 수 있는 나라의 중차대한 대외적 권위 훼손 문제로 본다’는 김 위원장의 ‘심려 말씀’에 따른 것이라는 전언이다.

이에 따라 당 선전선동부는 전국의 유랑걸식 노인 주민등록 조사 및 양로원 수용 사업을 지시함과 동시에 양로원을 새로 짓거나 이미 마련된 양로원 시설을 보완·정비하고, 현재 양로원에 수용하고 있는 인원과 급식 및 생활 조건, 의료설비 등을 면밀히 따져보며 보충사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특히 당 선전선동부는 ‘각 도의 당위원장들은 자기 부모를 모시거나 집을 나간 혹은 잃어버린 부모를 찾는다는 입장에서 사업을 진행하라’고 주문하면서 도별 경쟁 도표를 작성해 보고할 것을 요구하는 등 이번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선전선동부의 지시에 각 도는 비상이 걸린 상태”라며 “찾아낸 노인이 정작 자기 도 주민이 아니거나 법을 위반한 자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제가 가장 크게 제기됐는데, 일단 임시 조직된 전국의 책임지도분과들이 서로 협동하면서 정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다”고 말했다.

평양시 거리 풍경.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뒤로 한 노인이 앉아있다(기사와 무관).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주민들은 이번 사업의 취지는 긍정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60세 이상 독거노인이라는 기준에 충족한 경우에만 양로원에 수용하겠다는 것은 반대로 60세 미만이거나 연고가 있는 노인 부랑자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 가족이 부양하도록 강제하겠다는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다는 것.

실제 소식통은 “주민들 속에서는 ‘국가가 노인들을 돌봐준다는 정책은 좋지만 조사해서 가족이 있으면 집으로 보내 무조건 자식이 봉양하게 하려는 것 아닌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면서 “‘제 자식들도 배를 쫄쫄 굶기는 사람들이 부모를 데려다 놓는다고 다시 봉양하겠나. 도망치지 않으면 부모를 다시 내쫓거나 굶겨 죽일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국가가 노부모 부양 세대에 일정 정도의 생활비를 주는 등 모실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견해를 갖는 주민 대부분은 ‘살림이 어려워 돈을 벌려고 해도 기업소에 출근하지 않으면 안 되게 조직생활로 조이고 장사를 하면 장사한다고 빼앗지 않나. 먹을 것이 많으면 누가 이 세상에 자기를 낳은 부모를 버리겠나’, ‘노인들을 살리려면 먹을 것을 주면 된다. 더 살 수 있는데도 배고파서 제 명에 못 산다’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아울러 주민들 사이에서는 ‘호적상 돌봐줄 자식이 있는 노인들은 어차피 못 가는데 그런 양로원을 확장해서 뭐 하느나’는 등 양로원 확대 및 시설 보수에 대해서도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주민들은 ‘도당 간부들이나 법관들이 빈방이 많은 양로원 시설에서 휴양도 한다는데 이런 건 위에 보고나 되는지 모르겠다’, ‘대책을 내려면 료해(了解, 파악)사업을 잘하고 대중 속에 내려와 인민들의 생각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 ‘그냥 간부들이 올리는 제의서나 집행하니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등 간부들의 그릇된 행실과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을 지적하기도 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