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상 못챙기는 불효녀, 용서하세요!”

▲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

납북된 아버지 최종석(60) 씨의 환갑을 맞아 19일 문화일보 신문광고에 아버지 송환을 호소한 편지글을 게재한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35) 회장은 아침부터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됐다고 당황해 했다.

최 회장은 언론들의 관심을 반가워하면서도 “이러한 관심이 북한에도 전달 돼,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시기만 한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며 안타까운 심경을 표현했다.

오는 26일은 최종석씨의 환갑이자, 최 회장이 아버지의 생일을 못 챙겨 드린 지 18년째 되는 날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최 회장이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고, 40대 듬직했던 아버지를 병환에 시달리는 노인으로 만들만큼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지난 18년간 아버님께 생일상 한번 차려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사무친다는 최 회장은 자식 된 도리로 환갑에는 어떻게든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동진 27’호의 어로장이었던 최종석씨는 87년 1월 15일 백령도 부근에서 동료 선원 10명과 함께 납북 당했었다. 다른 선원들의 신상은 확인된 상태지만, 최씨는 간첩혐의가 씌어 일체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최 회장은 최근 정부 관계자로부터 아버지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전해 듣고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고 한다.

“가까이에 계셨더라면 모시고 병원에도 가고, 치료라도 받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기에 김정일 위원장에게 아버지 송환을 호소할 수 밖에 없었다”며 “생각 끝에 이렇게 신문에 광고를 내면 김정일 위원장도 분명히 볼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으로 편지를 싣게 됐다”고 밝혔다.

“아버지가 평소에 흰쌀밥과 생선회 소주를 좋아하셨다”며 “마음으로는 당장 아버지를 모셔와 환갑상을 차려드리고 싶지만, 그게 안 된다면 그 쪽에서라도 아버지의 환갑날을 기억해 상을 차려주면 고맙겠다”는 최 회장의 편지에서 납북된 부모와 형제, 자식을 그리는 남아있는 가족들의 피끓는 그리움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 아래는 편지 전문

이 편지를 북한에 계신 사랑하는 아버지께 바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

저는 1987년 1월 15일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경비정에 의해 납치된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 씨의 딸 최우영입니다. 이 편지가 위원장께 부디 전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이 사회를 믿고 언제까지 죽어가는 아버지를 기다릴 수 만은 없을 것 같아 위원장님께 간청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동진호는 민간어선이기에 당시 북한은 간단한 조사만 끝내고 다음 달인 2월에 선원들을 송환하겠다는 의사를 우리 정부에 통보해왔습니다. 설을 앞두고 아버지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마침 김만철 씨 일가의 망명이라는 사회적 관심사 앞에 그 희망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99년에서야 국가 정보원으로부터 아버지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후 저는 지난 6년 동안 아버지를 모셔오기 위해 수많은 호소활동을 해왔습니다. 2000년 2월 납북자 가족모임을 결성하여 햇볕정책의 수혜자이고 싶다는 탄원서를 김대중 대통령께 보냈으며, 국내외 인권단체를 비롯하여 정치인, 지식인들, 밖으로는 미국, 일본, 스위스 등을 방문하여 국제적인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모셔오겠다는 딸의 희망은 가깝고도 먼 남북한 관계 속에서 꺽이기 일쑤였습니다. 남한정부는 2000년 9월 2일 비전향 장기수들을 전원 송환시켰습니다. 그 당시 국민적 여론은 “갈 사람이 가면 올 사람이 온다. 납북자 가족들이여, 기다려라”였으며 비전향 장기수사 송환되면 납북자문제도 해결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5년을 참고 견디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변하지 않는 건 아버지에 대한 생사확인을 할 수 없다는 참담한 현실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또 다시 우리 정부는 비전향 장기수들 전원 북송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저는 북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년이 넘도록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위한 북한의 끈질긴 노력, 남한 내 인권단체와의 연대성, 자국민보호를 남북한 협상에서 최우선 과제로 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켜보면서 제가 북한 사람이었으면 지금쯤 아버지를 모셔왔을 것이라는 부러움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님!

위원장님께서는 부친이신 고 김일성 주석을 위해 지금도 엄청난 규모의 기념사업을 하고 계실만큼 효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자식입장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는 저의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부디 가족을 사랑하고, 인권을 생각하시는 마음으로 돌아가시어 납북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일본인 납북자들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하시어 귀국시켜준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남한 납북자 가족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계시는 것인지요?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아버지도 비전향 장기수이지 않습니까? 우리 정부에서 납북자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북한에서는 ‘납북자 없다’라고 해왔는데, 같은 사안인 일본인 납치 문제와 남한의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왜 이다지도 다른지….

납북자 문제를 더도, 덜도 말고 일본처럼만 대해주시길 요청 드립니다.

세상은 많이 바뀌어 수많은 사람들이 남북한을 왕래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의 무드 속에서 통일을 지향해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만약 위원장니께서 납북자 문제에 대해 최선을 다해주신다면 우리 국민들은 북한을 신뢰하고 통일을 위한 진정한 노력으로 여길 것입니다.

2005년 10월 26일은 저희 가족에겐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납북된 아버지가 60번째 생신을 맞으시는 환갑날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는 당장 아버지를 모셔와 환갑상을 차려드리고 싶지만, 그게 안 된다면 그 쪽에서라도 아버지의 환갑날을 기억하시어 상을 차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 아버지는 평소에 흰쌀밥과 생선회와 소주를 좋아하셨고 어머니가 끓여주신 얼큰한 매운탕을 즐겨 드셨습니다. 지난 18년 동안 남북한의 체제경쟁 구도 속에서 억울하게 간첩이란 누명을 써야만 했던 제 아버지가 이 날 만큼은 인간적 대접을 받으시기를, 이 딸은 눈물을 머금고 간절히 바래봅니다.

또한 제가 아는 바로는 아버지 건강이 위독하시다고 하니 더 이상은 건강이 나빠지지 않도록 치료와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납북자 문제 해결은 위원장님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부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아버지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진정한 통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며, 제 아버지와 같은 분들이 당당하게 38선을 건너 돌아오시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에서라도 한번도 잊은 적 없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환갑을 앞두고 정성껏 차린 밥상 한 번 올리지 못한 불효된 마음을 이 세상 아버지들과 아버지가 존재하기에 행복한 가족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최우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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