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러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24일 새벽 전용열차를 이용해 러시아로 출발했다고 북한 매체가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이번 방문에는 김평해·오수용 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리영길 군 총참모장 등이 동행했다. 그동안 북미, 북중 정상회담 등 김 위원장의 정상외교 행보마다 함께한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명단에 없었으며, 환송식 자리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랴티야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현 총리)과 회담 후 8년 만이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집권 이후 7년 만에 이뤄지는 첫 러시아 정상과의 만남이다.
전통적으로 북한과 러시아는 사회주의 우방 관계에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양측의 정상회담은 김일성 때 13회, 김정일 때 4회 등 총 17회 이뤄진 바 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북미 회담 결렬 후 진행되는 첫 정상 회담으로, 북한이 우방 러시아를 통해 대북 제재를 완화를 꾀하면서 동시에 미국과의 비핵화 논의에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김 위원장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노골화될 수록 그에 화답하는 우리의 행동도 따라가게 돼 있다”며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과 핵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미국이 주장하는 ‘선(先)비핵화 후(後)보상’이 아닌 ‘단계적 비핵화 및 동시적 제재해제’를 위한 나름의 독자적 전략을 취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의 이러한 발언이 가시화되는 첫 외교 행보가 될 전망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안보센터장은 데일리NK에 “이번 북러 정상회담의 실질적 의미는 결국 하노이의 충격을 흡수하는 것”이라며 “북한 스스로 중국 및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통해 독자 노선을 갈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 위원장은 또 “우리나라(북한)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호적으로 대하는 세계 모든 나라들과의 친선과 협조의 유대를 강화 발전시켜 나갈 것”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세계 모든 평화 애호 역량과 굳게 손잡고 나갈 것”이라고 시정연설을 통해 언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독자 외교 행보에 발맞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줄지도 주목된다.
러시아는 북한의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비핵화의 선행 조치로 인정하고 단계적으로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때문에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다시 한 번 이 같은 입장을 공식화함으로써 북한에 힘을 실어 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 같은 정치적 공조가 실질적으로 북한 경제 상황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 센터장은 “러시아가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및 제재 해제 방안에 정치적으로 의견을 같이 할 수 있겠지만 양국의 협력이 경제적으로 큰 효과를 가져 오진 못할 것”이라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대북 제재를 공식적으로 무시하긴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비공식적 방법으로 북한에 전기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일부 지역과 제한된 용량에 불과할 것”이라며 “러시아의 지원으로 북한의 숨통이 트일만한 정도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정상 회담 테이블에 공식 의제가 될 순 없겠지만 북한 노동자의 체류 문제, 에너지원 지원과 관련한 논의가 물밑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엔 대북 제재 결의 2375호에 따르면 올 말까지 북한 노동자 전원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단기 비자 등 형태로 북한 노동자의 체류를 연장을 꾀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북러 정상회담이 향후 북미 또는 남북 간 대화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독자 노선을 가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와 정치적, 경제적 협력을 이끌어낸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북미 협상에 활용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북미 대화 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에도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