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7월 중순에 이어 2주일 만에 다시 북중 접경을 다녀왔다. 매달에 한 번씩은 반드시 북중 접경지역을 다녀오려 한다. 한 달 만에 그리 큰 변화가 있을까마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달라지기에 갈 때마다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북녘 땅 역시 한여름을 지나며 초록은 더욱 짙어져 저 땅에도 강인한 생명이 움틈을 실감한다. 이 계절의 압록강은 그나마 북녘 사람들에게 옅은 숨이라도 쉬게 한다. 압록강과 두만강 물굽이는 북녘 주민들의 고단하고 주저로운 삶을 달래주는 듯하다. 빨랫말미를 한 듯 군대 막사 한 켠에는 빨래걸이가 세워졌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압록강 단교에서 바라보면 한눈에 보이는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 36층 살림집 공사현장은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2주일 전과 비교하면 빨간색 페인트로 외벽을 도색해 그나마 회색빛 앙상함을 벗어간다.
김정은의 신의주 개발 지시가 만리마 속도전으로 이어지면서 신의주 곳곳에 건설현장이 눈에 띈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 길을 내는 건 여전히 어려운 듯하다. “자력갱생을 번영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전인민적인 총공세를 펼치자”는 붉은색 선전 구호 역시 쉽게 볼 수 있다. 안으로부터 굳게 틀어 잠그고 자력갱생하자 외쳐댄다.
튼실한 콘크리트와 철근 대신 나무로 기둥을 세웠으니 밑절미는 당연히 굳세지 못하리라. 자력갱생의 공헌한 외침 마냥 붉은 깃발이 허공에 나부낀다. <전인민적인 총공세>, <자급자족>을 강조하면서 죽음으로 지키자는 <결사옹위>는 정작 일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하지 못한다.
빛의 속도를 살아가는 시대에 소달구지를 몰아가며 새로운 진격로를 열자고도 한다. 건물 꼭대기에 위태롭게 선 아버지의 바람칼이 하늘에 닿는다. 망치를 움켜쥔 팔뚝에 서린 굵은 핏줄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할 가족의 무게를 담은 듯하다.
그들도 <하나의 대가정>이라 외치지만 않으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도란도란 마주앉아 하루의 시름을 달랠 수 있으련만…. 수령과 당과 대중이 하나라는 집단주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한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옭아매는 쇠사슬이다.
한쪽에서는 ‘자력갱생’과 ‘민족적 자립경제’를 강조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평화경제’로 일본을 이기자 외쳐댄다. 총성 없는 전쟁이라 표현할 만큼 무한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자급자족, 자력갱생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거푸집과 기중기로 건물을 쌓으며 자력갱생을 외치는 지금의 북한 현실을 보고서도 평화경제를 운운하는 건 그야말로 몽상적 사고라 말할 수밖에 없다. 비정상적인 두 정상의 권력 놀음에 애꿎은 국민들만 더 아프고 힘겹다. 언제가 되어야 저 강을 건널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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