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소문난 ‘전국 8·3 인민소비품 전시회’에 먹을 것 없다?

지난 4일 평양제1백화점에서 전국 ‘8월 3일 인민소비품 전시회’가 열렸다. /사진=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북한은 지난 4일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평양제1백화점에서 전국 ‘8월 3일 인민소비품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에는 공장과 기업소, 가내작업반 등에서 만든 2만 5천여 종의 소비품 38만 5천여 점이 출품됐다.

8·3 운동은 1984년 8월 3일 김정일이 평양시 경공업제품 전시장을 현지지도한 날을 기념해 생활필수품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다.

북한은 196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우선 정책을 추진하면서 산업부문 간의 구조적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1980년대 초 경제가 후퇴하면서 생필품이 부족해지자 공장에서 나오는 여러 부산물을 이용해 인민소비품을 생산하기 위해 8·3인민소비품 생산운동을 시작했다. 각 도와 시(군) 지방공업부에 8·3담당 부서 및 부원을 배치하고 정책 과제로 집행했다.

그 결과 전국의 모든 공장기업소는 물론 협동단체와 동사무소 등에서 8·3작업반, 가내작업반, 부업반 등이 조직됐다. 8·3제품은 전문 공장에서 만든 제품보다는 못하지만 이마저도 공급받지 못하는 가구들에서 그런대로 사용해왔다.

8·3제품은 각 도와 시(군)에 이를 전문으로 판매하기 위해 설치한 직매점에서 판매된다. 8·3제품은 판매수수료를 제외한 나머지를 생산자들에게 배당한다.

북한은 8·3운동을 하나의 “소비품 생산 혁명”으로 광범하게 소개해왔다. 그러나 8·3제품은 기업에서 생산한 정규 제품에 비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민들은 8·3제품을 소위 ‘짝퉁’으로 간주한다. 유휴자재나 폐부산물로 만든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큰 인기는 없다.

북한의 8·3제품의 종류는 비교적 다양한데 주로 각종 섬유제품, 초물제품, 나무제품, 철제품, 학용품, 식료품 등이다. 생산주체는 공장기업소·협동농장이 생필품 직장을 따로 구성하거나 가내작업반, 부업반을 모집해 생산할 수도 있다. 노인이나 가정주부 등도 동사무소 등에 등록하면 집에서 8·3인민소비품을 만들 수 있다.

국내 일부 연구자들이 8·3 생산운동을 시장화의 시초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북한 당국은 8·3일 인민소비품 생산 운동에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하여 생산과 판매의 전 과정(제품선정, 자재구입, 판매, 이윤배분 등)을 자율화 하였다.

질적인 수준이 낮아 전반적으로 지역경제에 차지하는 부분이 작지만 일부 제품(술, 담배, 맥주, 장 등)은 나름 특산품 취급을 받는다. 북한 당국이 최근 들어 8·3소비품을 계속 장려하는 것은 자력갱생 기조 관철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판단된다.

북한이 경공업 생산 부진으로 8·3인민소비품 생산운동을 벌일 때 한국은 어떤 모습을 보였나?

1970~1980년대 한국은 수출주도형 경제 전략을 구사하여 섬유와 제지에 이어 제철, 자동차 및 선박, 전자, 석유화학 산업에 주력하면서도 경공업 분야는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어 생산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수출주도 경제정책과 함께 시장 개방 정책으로 선진 제품을 받아들여 국내시장에서 경쟁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 성장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은 2017년 기준 수출규모로 세계 6위로 올라섰다. 한반도에서 한 쪽은 세계화 체제에서 번영을 구가하고자 현대화에 전력하면서 경제체제를 합리화 하고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온 반면, 다른 한쪽은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조선시대적인 수공업 정신을 장려하면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1990년대 그 결과를 혹독한 재난으로 겪어야 했다. 북한은 여전히 세계 최빈국 일원이라는 불명예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로는 ‘인민의 행복’을 부르짖으면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집착하고 있다.

북한이 진심으로 평화와 발전을 원한다면 경제성장에 올인하면서 인민소비품 생산을 경쟁적인 시장체제로 넘겨야 한다.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각자가 온 힘을 쏟는 곳이 시장이다. 8·3운동에 무슨 숭고한 정신이나 조국애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상 경직된 지시와 조잡한 상품이 있을 뿐이다.

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북한 소비재 수준도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한계 또한 분명하다. 독일의 통합 과정에서 동독의 제품 수준이 서독 사람들의 기대에 너무도 미치지 못해 활용할 부분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북한도 정상적인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명분에 집착하지 말고 객관적 시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수준을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반성적이고 솔직한 자세로 인민소비품 개선을 위한 정책 대안을 만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