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지역에는 정말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들어가지 않았는가. 북한당국은 현재까지는 자국민 중, 한 사람도 감염되지 않았다고 발표하고 있다. 노동신문도 1월 22일을 시작으로 최근에 매일 두세 편의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에 그 방점을 찍고 있다. 북한당국 및 언론매체들의 보도대로, 북한지역은 전혀 전염되지 않은 것인가.
필자는 노동신문의 관련 기사들을 자세히 검토하고 동시에, 2003년에 발생한 사스 관련 기사 및 2015년의 메르스 사태 관련 기사들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번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 사스-메르스 관련 보도방식에 큰 차이가 있음이 드러났다. 각각의 바이러스 대한 노동신문의 첫 보도 시기는 거의 유사하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첫 보도는 1월 22일이었는데, 중국 우한시 당국은 작년 12월 30일에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사스 기사는 2003년 4월 7일에 처음 보도되었는데, 세계보건기구는 3월 17일에 바이러스를 ‘사스’로 명명했고 한국은 3월 16일에 사스 경보를 발령했다. 노동신문의 메르스 관련 첫 보도는 2015년 6월 12일이었다. 한국에서는 5월 20일에 첫 감염자가 발생했고 뉴스화되었다. 세 가지 모두 대략 20여 일 뒤에 보도되었다.
주요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보도방식(행태)이다. 사스 당시는 강 건너 불구경 식이었다. 사스 관련 기사는 2003년 4월 7일에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이상한 비루스>’라는 제하로 기사화되었는데, 그 내용은 사스의 발병 시기 및 지역과 세계적인 피해 상황(1,480명 감염, 55명 사망)을 건조하게 전했을 뿐이다. 사스라는 명칭도 쓰지 않았다. 4월 8일자에도 전체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알리는 데 그쳤다. 북한당국의 대응방침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단지 “지금 많은 나라들에서는 최근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이 전염병을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아시아 페염>이라고 부르며 그 방지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고 보도했을 뿐이다. 사스라는 명칭은 4월 10일 자에 처음 제시되었는데, 여기서도 전 세계적 피해 상황과 더불어, 발병원인 및 증상에 대한 정보만 제공되었다. 11일, 13일, 14일, 17일, 19일자, 관련 기사들에서도 북한당국의 대비책에 관한 내용은 일절 나오지 않았다. 4월 20일이 되어서야 보건성 책임자의 담화문이 실리면서 북한당국의 위생방역사업에 대해 처음으로 알렸다.
메르스 사태 당시에는 한국정부를 비판하는 데 그 초점을 맞추었다. 2015년 6월 12일에 ‘전염병 사태는 무능한 <정권>이 초래한 위기’라는 제하의 첫 기사를 올렸다. 내용은 한겨레신문의 6일자 보도를 인용하여 “메르스 사태 위기는 무능한 정권이 초래한 것이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국정부를 비판하는데 메르스 사태를 이용한 기사다. 23일, 24일, 7월 2일 관련 기사들도 한국정부를 비판하는 데 할애하였다. 메르스 관련 기사도 매우 간헐적으로 실렸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 노동신문은 북한당국의 대응방안 정보제공에 집중하고 있다. 1월 22일, ‘중국에서 신형코로나비루스에 의한 전염병 급속히 전파’라는 제하의 첫 기사에서 바이러스의 발생 시기, 지역, 피해 상황을 자세히 다루었다. 24일에는 중국뿐만 아니라 외국(미국, 일본, 피지, 몽골)의 피해 상황 및 대응양상을 보도했다. 25일에는 전 세계적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면서 중국 내 감염 지역의 확산을 구체적으로 알렸는데, 흑룡강성도 언급되었다. 그다음 날인 26일에는 길림성까지 전염된 사실을 전했다. 같은 날, 보건성 책임자의 담화(‘신형코로나비루스 감염을 철저히 막자’)를 실으면서 북한당국의 대응책을 자세히 보도하였다. 이후, 28일, 29일, 30일, 31일까지 예방 및 위생검역 관련 정보 전달에 집중하고 있다.
둘째, 북한 보건당국의 대응 양상(강도)의 차이다. 사스 당시에는 2003년 4월 7일에 첫 기사가 올라간 후 13일 만인 20일에 보건당국 관계자의 담화가 실렸고 메르스는 이틀 만(2015.6.14.)에, 이번에는 나흘 만에(2020.1.26.) 실렸다. 그런데, 사스와 메르스 당시에는 보건성 국가위생검열원 원장의 담화만 실린 것에 반해, 이번에는 보건성 국가위생검열원뿐만 아니라, 국가품질감독위원회(1월 31일)와 중앙위생방역소 관계자의 담화문도 실었다(1월 31일).
이는 북한당국의 예방 및 대응의 강도에 있어서, 사스-메르스 사태 당시보다는 훨씬 더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각 시기의 검역사업들을 구체적으로 비교해보자, 2003년 사스 당시에는 “의심환자로 예상되는 외국인들에 한해서는 엄격히 되돌려 보내거나 격리입원치료를 진행, 발생지역에 갔다 온 해외출장자들도 가족들과 함께 의무적으로 필요한 기간 격리시켰다(4월 20일, 김정일이 교시 하달). 사스 사태로 중국에서만 6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을 볼 때, 방비책이 그리 철저했다고 보기 어렵다. 2015년 메르스 당시에는 김정은의 교시가 아닌, 과거 김정일의 교시를 내세웠다. 김정은의 직접 지시가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철저히 대비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사스보다 사망률이 6배가 높았는데 말이다. 검역사업은 “또한, 비행장과 국경을 비롯한 모든 입국지점들에서 병이 발생된 나라와 중동지역에서 입국하는 인원들에 대한 검사검역사업을 그 어느 때보다 강화하며 조금이라도 이상 증상이 있는 대상들은 철저히 격리하여 해당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6월 12일). 외국인들의 출입을 막지는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떠한가. 검역수위가 너무나 지나칠 정도이다. 국가 존망까지 운운하며 철두철미하다. 외국인의 유입을 전면 차단할 뿐만 아니라, 중국에 거주했던 자국민들에게 조차도 입국을 불허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의 관련 교시도 세 차례(26, 29, 31일)나 실렸다.
북한이 예년과는 달리 왜 이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말이다. 현재 북한의 이 같은 대응은 시진핑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시진핑은 1월 25일에서야 공식 입장을 내놨는데, 북한은 발 빠르게 22일에 중국인들의 북한지역 관광을 전면 중단시켰다. 중국과의 접경지역도 곧바로 폐쇄했다. 2020년 들어, 대미 강경전략을 꾀하고 있는 북한으로서 어느 때 보다 중국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말이다.
이번 대응조치로 인해, 경제적 타격도 감수해야 한다. 통계에 의하면, 2019년 작년 한 해만 북한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의 수가 35만 명을 넘었고 관광수입이 1.75억 달러였다고 한다. 유엔의 대북제재로 해마다 10억 달러 이상의 감소세로 외환보유고가 거의 바닥난 북한은 그 돌파구로 중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이것이 그나마 경제 파탄을 막아내는 버팀목이었다. 그런데, 이 버팀목마저 과감히 걷어찬 것이다.
도대체 왜 북한은 이렇게 엄청난 리스크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막아내는 데 집착을 하는 것인가. 요란법석을 떨면서 말이다. 사스-메르스 때와는 너무나 다른 처세가 아닌가. 31일자 노동신문에서 “감염자들을 철저히 격리시키고…”라는 내용의 중앙위생방역소 과장의 이 말이 왜 자꾸 현재형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중국 우한시에서 바이러스 첫 감염자는 12월 8일에 발생했지만, 바이러스의 출현을 그 이전으로 보는 중국 전문가들이 다소 있다. 만일, 11월로 본다면 북한이 중국 관광객 불허한 지난 1월 22일까지는 두 달의 기간이 있다. 2개월 동안만 해도 중국 관광객의 수는 6만 명이 훨씬 넘는다. 이들 중, 우한시 거주자가 한 명도 없었겠는가. 적어도 북한은 2개월 가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무방비상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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