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가는 길… ‘분단’의 의미를 바로 알자

1. 분리와 분단 : 권력영합성(權力零合性)


한국은 반세기 이상 분단을 유지해 왔으나 분단에 대한 참고할 만한 개념 정의 하나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분단이란 무엇인가?


우선 ‘분단’은 권력영합성(權力零合性 Zero Sum)을 가짐으로써 ‘분리’와 구분된다. 여기서 권력영합성이란 하나의 인구집단에 하나의 주권만 존재해야 할 때, 한 정부가 주권을 가지면 다른 한 정부는 주권을 상실하고 두 정부 간에 얻고 잃는 권력의 합(合)은 영(零)이 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하나의 국가가 둘 이상의 국가로 분리되는 현상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으나, 분리된 국가 간에 재결합의 압력, 즉 분리되기 전의 인구집단에 대하여 하나의 권력구심력(정부)만 존재하게 하는 압력인 권력영합성이 작용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분단’과 ‘분단 아닌 분리'(이하 ‘분리’)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파키스탄 키프로스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로비아가 갈라진 것은 분리이고, 남북 베트남. 대만과 중국, 한국과 북한은 분단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분단국들은 역사의 단일성, 언어의 동일성 등 사회적 동질성에 의해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단일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나, 정치적 원인에 의해 두 개 이상의 정부가 발생하여 국가가 분리되고 그로 인해 정부단일화의 압력인 권력영합성이 작용하는 것이다.


분리된 국가 간의 관계는 일반 국가들 간의 관계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분단된 국가 간의 관계는 단일화 압력이 작용하는 만큼, 일반 국가들 간의 관계보다 더욱 적대적이다. 단일화의 압력이 큰 만큼 권력영합성은 커지고 상호불신과 적대는 커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정치적 원인이 아니라 사회적 원인에 의해서 갈라졌다면 재결합의 압력은 있을 수 없고 권력영합성이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은 분단이 아니라 분리가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분단은 하나로 합쳐질 때 안정될 수 있고, 분리는 나누어질 때 안정될 수 있다. 나누어질 때 안정될 수 있는 분리는 각자 자기 정체성을 갖기 때문에 권력영합성이 작용하지 않는다. 또 두 사회가 재결합하더라도 권력영합성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협상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


그러나 강력한 권력영합성이 작용하는 분단에서는 협상에 의한 통일의 시도는 상상하기 힘들다. 분리의 이유가 없고 통합되지 않은 사회의 권력투쟁은 패배한 세력이 물리적으로 제거될 때만 안정될 수 있기 때문에 협상의 가능성은 존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분단관계에서 대화나 협상에 의해서 권력의 단일화를 추구하는 것은 사회의 분열만 확대시키는 감상적 대중선동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단의 극복은 대화와 소통이라는 대중선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사회가 각자 전체 구성원의 참여를 확대시키는 개방체제를 안정시키거나, 두 사회의 체제경쟁의 승패가 확정됨으로써 적대성이 사라질 때 가능한 것이다. 남북키프로스는 그리스인들과 터키인들이 스위스처럼 하나의 국가로 살다가 두 개로 분리된 후 다시 결합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관계는 분단이라고 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단일국가성이 약했던 예멘은 1995년 전쟁에 의한 평정 이전에는 분단상태였다기 보다 분단과 분리의 중간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분단성이 약한 만큼 권력영합성이 약하고 그 결과 비록 실패하여 전쟁으로 귀결됐지만 협상에 의한 주권 단일화 시도가 가능할 수 있었다. 예멘은 남북분리가 이미 오래 전에 종료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부족주의를 극복하지 못하여 중앙정부의 관할권은 전 영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 분할과 분단 : 민족주의의 미성숙


다음, 분단은 국가가 분리되는 원인에 따라 ‘분할’과 구분될 수 있다.


하나의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하나의 정치적 단일성을 지향하는 사회가 외세에 의해서 분리된 경우를 분할이라고 하고, 내부의 분열성에 의해서 분리된 경우를 분단이라고 한다면 통일전 동서독은 ‘분할’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2차대전의 전쟁 책임으로 전승국에 의해 4분할 점령된 후 동서냉전에 의해 동서독으로 통합 양분되어 유지되고 있었다. 분할의 종료는 냉전의 종료에 의해서만 가능했고 독일인들 스스로에 의해 결정될 수 없었다.  


반면, 분단은 사회적 통합력이 결여된 전근대적 사회가 근대세계의 개방성에 노출될 때, 어떤 계기에 의하여 근대적 개방을 추구하는 자유주의 세력과 폐쇄적 지배를 추구하는 배타적 원리주의세력이 사회를 분리 지배하여 권력영합적 체제경쟁을 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한국, 독일, 오스트리아는 다 같이 외세에 의해 분할됐으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분할이 종료됨과 동시에 원래의 국가단일성이 복구되었다. 반면, 한반도에서는 분할이 종료됨과 동시에 분단이 시작됐다. 민족주의가 이미 실현된 선진사회는 점령군이 철수함으로써 분할이 종료되고 통일되지만, 민족주의가 실현돼야 할 후진사회는 점령군이 철수함으로써 분할이 종료되고 분단이 시작된다. 분할은 점령군의 철수로 종료되는 현상이고 분단은 점령군의 철수로 시작되는 현상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분단이란 분리의 힘이 내부에 존재하는 분리이고, 분할이란 분리의 힘이 외부에 존재하는 분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분단의 주된 원인은 사회의 통합력이 결여된 후진적 분열성이라 할 수 있고, 분할은 분단의 한 계기가 될 수는 있으나 분단의 원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분할 없이 내전에 의해서 분단됐고 오스트리아나 독일은 분할됐으나 분단되지 않았다.


분단과 분할은 그 유지 과정에서도 명백히 다르다. 통합된 국가주체로서의 국민(민족)이 형성되어 분단될 수 없었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전쟁이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 중국, 베트남은 지배세력들이 백성(인민)들을 동족상잔에 동원하는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분단과 분할은 그 극복과정에서 더 명백한 차이가 난다. 분단이나 분할의 극복은 모두 권력영합성의 극복이다.


그러나 분할이 종료될 때, 분단되지 않는 사회의 분할극복 과정에서는 권력영합성의 해소가 단일성의 복구이기 때문에 점령군만 철수하면 하룻밤 새에 완전한 단일민족국가가 이뤄질 수 있지만, 분단의 극복에서는 분단국가에 따라 권력영합성의 해소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단일민족국가의 형성인 통일은 분단극복의 한 유형일 뿐이다.


또한, 통일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분단의 극복은 사회적 통합력을 복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통합력을 형성 또는 축적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코 한 순간에 이루어 질 수 없고, 민족단일성을 복구하는 분할극복의 통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3. 분단극복의 필연성 : 체제 승패 확정에 의한 적대성의 소멸 


따라서 분단이란 단일국가의 역사를 갖고 있으나 사회적 통합력이 결여된 후진사회가, 사회적 분리요인 없이 정치적 대립에 의해 분리되어 권력영합적 체제경쟁을 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규정에 해당하는 분단의 사례는 세계 3대 유교국가였던 한국, 중국, 베트남의 세 경우뿐이다.


한반도는 2차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과 소련의 분할점령에 의해서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었고 점령군이 철수하자 남북한으로 분단되었다.


미국이 일본에 대한 단독점령의 대가로 한반도를 소련과 분할점령 하였고 사회적 통합력을 결여한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되어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된 결과, 분할이 종료되었을 때 분단으로 전환된 것은 필연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분단은 미국과 소련의 자의적 분할 때문도 아니고 정치세력들의 분열성 때문도 아니다. 분할점령은 분리지배하기 위한 음모의 결과가 아니라, 통합되지 못한 사회에서 자기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지역이 전승국의 세력견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점령군이 철수할 때 이미 민족주의를 실현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처럼 단일민족국가로 복구되지 못하고 분단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통합되지 못한 사회에서 극단적 원리주의가 횡행할 때 두 개의 권력구심력이 형성되면 대화에 의해서 또는 정치적 조정에 의해서 단일화되는 현상은 쉽게 상상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식민지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낙후되었고 권력구심력을 형성하지 못했던 사회가 -(이씨조선은 1873년 대원군이 실각했을 때 국가로서의 존속능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오늘날 북한의 김씨조선이 국가로서의 존속능력을 상실하고 주민통제의 관성에 의해서 연명하고 있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는 상황이었다. 만약 오늘날이 제국주의 시대라면 김씨조선과 같이 실패가 확정된 체제는 이미 존재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식민지배를 통하여 약간의 개방사회 경험을 하였으나 그것이 단일민족 국가성을 형성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한반도의 분단을 ‘자의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통일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전체 인구의 역동적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는 역사의 필연적 흐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수 정치세력들의 정치공학에 의해서 조립될 수 있다는 발상과 다를 바 없다.


한반도는 분단의 결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당시 세계 후진지역을 휩쓸던 공산주의의 광풍 속에서, 천 년 이상 원리주의 문화가 지배해온 한반도는전체가 적화되었을 것이다. 또 각각 3000만 명 이상이 살육된 소련과 중국의 경우를 볼 때 한반도 전체가 적화되었다면 그에 따른 희생은 전쟁의 경우보다 더 적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더구나 분단의 결과 남쪽의 한국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에 의해서 중산층도 없이 강력한 반공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고, 강력한 반공체제를 통하여 국민참여를 극대화하는 민주화를 실현하고 추격발전체제를 확립하여 오늘날 자유주의를 안정시켜가는 단계에 도달했다. 2차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한국과 대만의 자유민주주의적 선진화는 분단에 의해 확립될 수 있었던 강력한 반공체제가 한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분단은 통일의 에너지가 잠재되어 권력영합성이 작용하는 분리이다. 한반도의 남북은 체제경쟁의 결과, 이제 승패가 확정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적대성이 소멸되고 불안정한 권력영합성이 필연적으로 극복됨으로써 통일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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