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北 미사일·핵실험 세트메뉴 품평회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고 김관진 국방장관에게 북한의 핵실험에 강력한 대응태세를 지시하였다.


박근혜 당선자는 미국 로이스 하원외교위원장을 만나 “만일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다면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이런 움직임에 대하여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동참할 경우 “보복의 불벼락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연합통신은 전했다.


필자는 지난번 칼럼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단어 대 단어’ 조차 똑같은 그동안의 반응을 지적하면서 ‘혹시 중국과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저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환상을 경계하자고 했다. 


또한 미국이나 중국이 핵실험을 한 북한에 ‘초강력 제재’를 할 것이라는 희망도 버릴 것을 요구하였다. 왜냐하면 핵실험 이후 대략 한달 정도면 제재니 뭐니 하는 상황은 종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 진실은 그 보다도 더 착잡할 것이다. 왜 그럴까?


흔히 북한의 미사일-핵실험 도발의 패턴이 있다고 말한다. 비유하자면 에피타이저는 ‘미사일발사’, 메인은 ‘핵실험’으로 구성된 이 세트메뉴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후식으로 끝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 세트메뉴의 중간 중간에는 ‘유엔제재주’라는 반주 혹은 ‘BDA 펀치’라는 칵테일이 곁들여지지만 그것은 전식에서 후식에 이르도록 김가의 식욕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도울 뿐이다. 세트메뉴의 확실한 흐름 때문에 북한은 마음 놓고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할 수 있다. 북한의 2차 핵실험의 진행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2009년 2월 초,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징후 포착
⇒ 한국, 미국, 중국 미사일 발사 경고(내용은 작년 미사일 발사 때와 대략 동일!)
⇒ 2009년 4월 6일 미사일 발사
⇒ 한국, 미국, 중국 북한의 미사일 발사 규탄, 유엔제재 결의 돌입(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이번 유엔제재와 대략 동일!)
⇒ 2009년 5월 초, 북한 유엔제재를 이유로 핵실험 예고(내용은 이번 3차 핵실험 예고와 대략 동일!)
⇒ 한국, 미국, 중국 북한의 핵실험 예고에 대해 경고(내용은 이번 3차 핵실험에 대한 경고와 대략 동일!)
⇒ 2009년 5월 26일 북한 2차 핵실험
⇒ 중국 북한의 핵실험 결사반대, 환구시보(環球時報) 북한의 배은망덕 규탄(이번 3차 핵실험 후의 반응도 대략 동일할 것임!)
⇒ 2009년 5월 26일 핵실험 후 20시간 만에 유엔안보리 대북규탄 결의안 채택(이번 3차 핵실험 후 유엔안보리의 반응도 대략 동일할 것임!)


여기서 당시 한국의 반응을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는 PSI에 참여할 것을 선언하고, 북한은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한다고 격렬히 비판하면서 ‘군사적 타격을 하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리고 서해에서 실크웜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긴장의 수위를 한껏 높였다. 앞에서 언급한 조평통의 “보복의 불벼락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협박의 2009년 버전이다.


남북관계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언론은 북한 핵실험으로 인해 “대화를 통해 비핵화와 개방화를 돕고 경제개발을 지원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상생·공영’ 대북정책은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고 보도하였다. 곧바로 박근혜 당선자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만날 상황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실험을 결사반대하고 북한을 배은망덕하다고 규탄한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핵실험 직후 언론은 “대북제재에 소극적이었던 중국이 오래된 고객(북한)으로부터 조용히 플러그를 뽑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때쯤 한국의 어떤 야당은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이명박 정부의 냉전적 대북정책이 불러일으킨 결과임을 지적한다’는 창조적 해석을 제시하였다. 이 해석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국좌파의 ‘기본입장’으로 자리 잡았고, 박근혜 당선자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은 거의 100%라고 보아야 한다.


2009년 6월 10일, 여론의 기대에 부응하듯 중국은 안보리가 유엔헌장 7장 41조를 원용하여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해 “가장 강력한 어조로 규탄한다(condemn)”는 데에 동의하였고, 북한의 선박 검색과 대량살상무기 수출 금지조치에도 동의하였다. 이번에도 중국은 유엔안보리의 결의안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불과 2주일 후인 2009년 6월 26일, 청융화(程永華) 주한 중국대사는 “대북제재가 안보리 행동의 목적은 아니다. 정치적 외교적 수단이 한반도 관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하며 실행 가능한 수단”이라며, “6자회담 참가국들이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2차 핵실험 후 정확히 한달 만에 중국의 입장은 핵실험 이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도 중국은 북한을 때리듯 하다가 껴안을까? 그럴 것이다. 이미 한국의 야당은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박근혜 정부가 강경 대응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물며 북한의 동맹국 중국이 무슨 이유로 북한에 매질을 하겠는가?


2009년 6월 말 평양의 세트메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후식이 남았다. 2013년 ‘월간조선’ 2월호는 2009년 10월 이명박-김정일 회담개최를 위한 비밀접촉에 대해 임태희 전 노동부 장관과의 인터뷰를 게재하였다.


“핵 문제를 정상회담에 의제에 올려놓은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습니다. 회담 의제가 되었다는 것은 해결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해결할 생각도 없이 왜 의제에 올리겠습니까. 북한은 협상 초반에 핵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논의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결국 북한의 핵실험이 이명박-김정일 회담 성사에 불을 지핀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의 전통에 따르면 먼저 오고 가는 것이 있어야 한다. 옥수수 5만 톤이 착수금으로 요구되었다고 한다. 불과 3, 4개월 전에 한국은 유엔안보리에 강력한 제재결의안을 요구하였고 중국이 북한의 명줄을 눌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는 모두 개그 콘서트나 다름없다. 솔직히 말해,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이 가당한가?


대북전문가들은 이번 3차 핵실험을 통해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작업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북한의 목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북한은 ICBM을 만들어서 한국과 미국의 군사동맹을 균열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북한이 공언하고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이 목표를 한국 국민이 인식하기 어렵도록 희미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책임이다. 이런 점에서 ‘북핵은 북한, 친북좌파 그리고 중국의 합작품이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도대체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서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