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분단의 이분법이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지난 30일 진보정당 통합과 관련 논의에서 한 말이다. 그는 북한의 3대 세습 비판으로 ‘분단의 이분법이 만든 방어막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3대세습 비판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은 남북이 대결하는 분단 논리에 기인한 것으로,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대표의 ‘이분법 논리’ 주장은 한 마디로 자신들의 종북노선을 감추고 정치적 이익을 거두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사실 민노당 국회의원들과 간부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그야말로 엉뚱한 ‘이분법’ 논리를 구사하고 있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분단의 이분법 논리는 ‘북한을 비판하지 않으면 친북이냐?’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진보운동을 해온 사람치고 누구든 이분법의 굴레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 진보운동은 모두 친북이라는 의미인가? 이 대표의 ‘북한을 비판하지 않으면 친북이냐’라는 이분법 논리에는 객관성과 진실성, 정의가 빠져 있다. 오히려 이 대표를 포함한 민노당이 분단의 이분법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만약 민노당이 정치강령이나 정책에서 대북정책 혹은 남북통일을 거론하지 않는다면, 또한 민중을 위한다는 진보정당을 표방하지 않는다면 북한 체제의 문제점이나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 정당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민노당은 남북통일과 진보를 핵심 가치로 표방하는 정당이다. 또한 진보정당이 비판하지 못할 성역이 있다는 것은 자기모순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진보가 마치 친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처럼 상황을 왜곡한 데서 한 발 더 나가 진보신당과의 합의문에 “북한의 권력승계문제는 남한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로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6.15공동선언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말도 넣자고 주장했다.
6.15공동선언은 북한을 실존하는 체제로 규정했을 뿐, 그 체제의 독재까지 용인한 것은 아니다. 6.15공동선언 제1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간다’고 명시했다. 제1항의 ‘우리민족’에는 분명 남한의 국민과 북한의 인민이 포함된다. 6.15공동선언 그 어디에도 북한 인민을 억압하는 독제체제를 용인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6.15공동선언 제2항에서 언급하는 ‘공통성’은 남북한의 통일방안일 뿐 체제 형태가 아니며, 통일방안도 확정된 것이 아니라 ‘지향’해야하는 가변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통일을 지향한다는 것은 남과 북이 변화를 통해 하나의 통일체제로 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변화해야 할 지점은 무엇인가? 이 대표는 이런 대목에 늘 침묵한다. 그가 ‘6.15공동선언을 지지한다’고 입버릇 처럼 말하지만 실제는 자신의 변호를 위해 그때 그때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지난시기 6.15공동선언은 남북한 민초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북한 정치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돼 왔다. 민노당은 지금도 집권이후 3백 만명 이상을 굶겨죽인 김정일을 비판하지 않고 있다. 김정일 독재와 3대세습을 지적하면 북한과의 협력이 어려워진다는 착각 때문이다.
김정일과의 협력을 ‘남북교류’나 ‘평화조성’ 등의 정치적 성과로 부풀이려는 당론이 철회되지 않는한 민노당이 북한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해 보인다. 민노당이 분단상황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집단이라는 비판도 그리 과한 것은 아닌 듯 하다.
민노당은 노동자, 농민의 권익 보장을 목표로 출발한 당이다. 원내 의석도 갖고 있고, 대통령 후보도 세 번이나 내세울 정도로 집권 의지도 높은 공당(公黨)이다. 때문에 이 대표가 진심으로 남북통일을 지지한다면 북한의 노동자, 농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서도 한번 쯤 심사숙고해야 한다.
국민여론이 민노당에게 북한 3대세습에 대한 입장을 묻는 것은 ‘친북이냐, 반북이냐’를 따지기 위함이 아니다. 민노당이 남한의 노동자, 농민만을 위해 일하는 반쪽 정당인지, 북한의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까지 고민하는 온전한 정당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공당으로써 피할 수 없는 북한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독창적인 해법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한 것이다. 만약 민노당이 남한용 기준과 북한용 기준을 각각 갖고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짜 ‘이분법적인 태도’로 결론지어 지어 진다.
이 대표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다. 때문에 북한 3대세습에 대한 그의 부실한 논리를 현실 정치인의 ‘처세’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마음속으로는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의지가 전혀 없으면서, 겉으로는 국민들의 여론이 무서워 눈치보기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년 총선, 대선 등 주요 정치일정 과정에서 우리 국민들은 북한 문제에 대한 이 대표의 생각과 견해를 계속해서 궁금해 할 것이다. 이 대표가 북한 문제에 대해서 뭔가 특별한 ‘고민’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다. 작정하고 국민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북한의 3대세습에 대한 입장과 민노당 차원의 정책을 발표하는 것이 옳다.
민노당이 집권 가능한 진보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 대표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 대표가 먼저 자기기만과 결별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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