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6월 19일 당 제8기 3차 전원회의(6.15~18)가 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되었다고 보도하였다. 이번 회의는 의제가 ‘현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과 우리당의 대응방향’ 등 6가지나 되고 4일간에 걸쳐 진행되어 거의 당대회에 버금가는 수준의 회의였다. 올해 초 개최된 8차 당대회 제시과업 중간결산, 코로나 사태 장기화 대비 차원의 정책회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백미(白眉)는 아무래도 북한의 핵(核) 협상장 복귀 여부였다.
“의제: 1. 주요 국가정책들의 상반년도 집행정형 총화와 대책에 관한 문제 2. 올해 농사에 힘을 총집중할데 대한 문제 3. 비상방역상황의 장기성에 철저히 대비할 데 대한 문제 4. 현 국제정세에 대한 분석과 우리 당의 대응방향에 관한 문제 5. 인민생활을 안정향상시키며 당의 육아정책을 개선 강화할 데 대한 문제 6. 조직문제”
김정은의 바이든을 향한 첫 일성
김정은의 장고가 끝났다. 4월 미국의 대북정책 리뷰 완료와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의 대화·협상 강조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던 김정은이 3일차 회의에서 향후 대응방향에 대한 결론을 냈다.
북한은 전략전술적 차원에서 상세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보도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의 ‘군사력 지속 강화+협상 재개 대비’의 투트랙 대응 전략전술이다. 이는 김정은이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되여 있어야 하며 특히 대결에는 더욱 빈틈없이 준비되여 있어야 한다”, “시시각각 변화되는 상황에 예민하고 기민하게 반응대응하며 조선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데 주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데서 엿볼 수 있다. 이 같은 기조는 이번 회의에 앞서 개최되었던 당중앙군사위원회(6.11)에서도 “급변하는 정세에 맞춰 고도의 격동태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지시한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
향후 북한은 섣불리 대화의 장에 복귀하기 보다는 8차 당대회 제시과업 관철과 전투태세 강화에 주력하면서 8월 한미합동군사훈련 등 대북적대시정책의 철회 주장을 계속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대화는 이러한 선행조건(당근)에 대한 약속이나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만 고려할 것이다. 남북관계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도 이런 선상에서 해석된다.
일부에서 김정은이 이번 회의에서 “대결과 대화 모두 준비”를 지시한걸 두고 대화복귀 징후로 해석하였는데, 이는 일부분만을 자의적으로 확대 평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이 ▲“특히”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대결적 태세를 견지하라”고 강조한 점 ▲그리고 북한이 회의 의의를 “가장 엄혹한 환경속에서 중대결정을 내린 역사적 회의”라고 강조하고 있는 점을 간과한 평가이다.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전원회의는 가장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복리를 위한 중대결정들을 내린 력사적인 회의로,전진도상에 난관이 중첩될수록 더 큰 분발력으로 새로운 전진의 시대,력동의 시대를 과감히 열어나가는 조선로동당의 불패의 령도력이 남김없이 과시된 의의깊은 회의로 주체혁명사에 뚜렷이 아로새겨질 것이다.”(2019년 6월 19일 조선중앙통신)
김정은은 당분간 올초에 제시한 핵+자력갱생에 기초한 ‘정면돌파전 2.0’을 보다 강화·내실화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였다는게 보다 현실적인 판단이 아닐까. 다시말하면 당분간 강대강 쪽에 더 무게를 둘듯 하다. 금명간 시진핑(習近平)과의 만남도 상정해 볼수 있다.
정부의 대처 방향
한국 정부와 여당 측 인사들은 지난 3년여간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북한의 막말과 무시, 막가파식 도발을 참고 또 참으며 북한에 러브콜을 보내왔다. 특히 새로 출범한 미국 바이든 정부와의 한미정상회담에서도 역내질서 재편·무역 등 현안문제와 관련 그동안의 입장에서 180도 유턴, 미국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의외의 행동까지 보였다.
김정은을 회담 테이블로 다시 불러내기 위해 북한의 억지주장이자 향후 협상에서 한국과 미국을 곤혹스럽게할 ‘한반도 비핵화’(사실상의 조선반도비핵지대화론) 용어까지 미국을 설득하여 포함시켰고, ‘6.12 싱가폴 트럼프-김정은간 정상회담 합의문 계승’ 명문화까지 관철시켰다.
특히 6월초에는 한겨레신문,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등 친여매체와 관변인사들이 일제히 나서 북한이 지난 8차 당대회(1.5~12)에서 개정한 이후 비밀로 관리해 오던 당규약 서문 내용을 입수,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까지 보였다. 북한이 “얼굴을 같은데 분칠만 하였다(일종의 용어혼란 전술)”는 것은 북한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은 누구나 바로 알수 있는 있는데, 더구나 ‘강력한 국방력에 기초한 통일’을 새롭게 명문화한 상황에서 “북한이 김일성이후 추구하던 남조선혁명노선을 포기하였으니, 이에 상응하여 국가보안법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과 학문적 양심을 벗어난 아첨(곡학아세:曲學阿世)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18일 북한이 전원회의에서 이례적으로 식량사정의 어려움을 토로하자 곧바로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 대북 식량지원 카드를 내밀었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의 목표, 종착역은 어디일까?
그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이다. 그런데 임기를 채 1년도 남지 않은 현정부, 특히 북한이 핵과 자력갱생을 기조로한 ‘정면돌파전 2.0’ 노선을 다시금 천명한 지금의 상황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평화를 위한 뜻과 열망은 좋지만, 정말 차분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불만 켜면 죽을지도 모르고 달려드는 불나방’ 격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난 3년여를 뒤돌아 보자. “비굴하다. 위험하다”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일방적으로 구애한 끝에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나?
첫째, 어림잡아 남북한간 50:0의 핵무기 완전 비대칭 구조이다. 핵인질 상황, 안보위기 상황이 분명하다. 김정은이 최근 2차례의 열병식을 통해 보여준 전략무기와 신형전략무기 고도화 계획은 가공(可恐) 할만한 수준이다.
둘째, 국격과 국민자존심 손상이다. 북한으로부터의 무시는 물론이고 대통령이 핵질서, 인권, 종교의 자유 등을 전통적으로 강조하는 유럽을 순방하며 같은민족·평화라는 미명하에 독재자 김정은의 편을 들어주는듯한 행태를 보이는 것에 대한 외신의 비아냥은 이제는 일상화 된 듯하다.
셋째, 국력의 낭비이다. 세기적 대변혁기에 세계로 미래로 더욱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 우리 한국은 북핵과 북한에 갇혀있다.
여기에 덧붙여,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고나 할까. 김정은은 그간의 장고를 끝내고 ‘마이 웨이(my way)’를 재천명했다. 핵보유국-핵군축협상으로 가기 위한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 국가적 위기이다. 북핵 폐기가 더욱 요원해 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흘러간 옛노래 ‘평화, 대화 레퍼토리’만 천편일률적으로 외쳐대고 있다.
정부는 미몽(迷夢)과 집착에서 깨어나야 한다. 콩깍지를 벗고 김정은과 북한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 북한에 억지로 매달릴게 아니라 자주국방, 한미공조, 국제사회 연대 강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도모해 나가면서 ▲ 그동안 백안시(白眼視) 했던 ‘나토식 핵공유’를 비롯한 자체 대비태세 강화책 논의도 병행해 나가야 한다. ▲ 무엇보다도 임기내 가시적 성과 거양이라는 목표를 내려 놓아야 한다. 차기 정부, 아니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초석을 놓겠다는 자세로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가 워싱턴 한미정상회담이후 최초이자, 대북특별대표 자격으로 처음 방한(6.19~23)하는 성 김 대표단과의 회담을 어떻게 진행해 나갈지가 주목된다. 아무쪼록 한국과 미국이 함께 손잡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이정표라는 격찬을 받은 워싱턴 합의문을 자의적·일방적으로 해석하거나, 그간 실패를 거듭해온 대북 단기 이벤트에 집착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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