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 칼럼] 김정은과 요리사 후지모토

북한 김정은 제1비서의 초대로 북한을 방문(7월21일~8월4일)해 11년 만에 그와 재회한 후지모토 겐지가 처음 한 말은 “(김정은이) 정말로 인간이 커졌다”는 것이었다. 부인 이설주에 대해선 “매우 멋진 분. 그 것 이외는 말할 필요 없어요”라는 칭찬을 쏟아냈다.

일본 귀국 후 TV에 출연해서는 “북한은 많이 바뀌어 훌륭한 모습이었다”, “가게들에는 물건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북한’이라고 표현했던 것도 ‘공화국’이라고 바꿔 말했다. 이러한 발언은 그가 방북하기 직전, 베이징 공항에서 김정은을 ‘김정은 원수님’이라고 불렀던 것에서부터 예상된 것이었지만 그의 변신은 예상됐던 것보다 매우 커서 일본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후지모토 겐지가 ‘김정은의 충실한 신하’로 변신한 증거는 그의 말뿐이 아니다. 그의 가슴에 달려 있던 ‘김일성 김정일 배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배지는 김정일 사후에 만들어진 것이고 노동당 간부가 착용한 것과 같은 것이다. 북한에서는 가슴에 붙이는 배지 종류로 그 신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는 틀림없이 북한 특권층으로 돌아갔다.

이번 후지모토 북한 방문에 가장 당황하는 자들은 짓궂게도 조총련계 사람들이다. 김정일의 비밀을 폭로한 배신자 요리사가 조총련 의장과 중요 간부, 주요 상공인을 제쳐놓고 ‘특별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반자 후지모토를 혁명의 공로자 이상으로 대접한 행위는 납득하기 어렵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가치관으로부터 너무 일탈한다”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후지모토를 평양으로 불러들인 이유

현재 김정은 체제에 있어서 시급한 과제는 외화 획득이다. ‘6·28 경제 조치’를 실행하기 위해서도 외화가 필요하다. 재원을 자국 통화로 마련한다고 해도 통화 발행에 수반한 물건과 돈이 담보되지 않으면 ‘7·1 조치’ 때와 같이 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이 일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최근 장성택을 중국으로 보내 경제특구에 대한 특별 조처와 대규모 차관을 요청했다.

북한은 북미 교섭이 교착되고, 남북 관계가 정체된 가운데 식료와 외화를 확보하기 위해서 일본과 접촉을 재개했다. 일본의 지원은 2002년 고이즈미-김정일 간에 작성된 ‘평양 선언’만 이행되면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에는 ‘일본인 유골 문제’로 4년 만에 북일 예비 교섭(북경)이 진행됐다. 북한과 일본은 과장급 예비회담을 국장급 본회담으로 격상시키기로 했다. 납치자 문제에 대해 북측이 모종의 제안을 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회담도 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다. 여론 동향은 매스컴이 잡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컨트롤은 조총련에서는 무리라는 것을 북한은 충분히 알고 있다. 거기서 선택을 받은 자가 매스컴에 강한 ‘후지모토 겐지’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후지모토 초청에서 보이는 북한의 강한 의지

북한은 후지모토 활용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해서 용의 주도하게 진행했다. 그리고 이번 그의 ‘배반’을 용서하고 파격적인 ‘환대’로 김정은 제1서에 대한 충성심을 마음에 깊이 심었다.

후지모토는 방송에 출연해 “북한에서 지시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밝혔지만, 지시가 없더라도 ‘충성심’을 심어 둔다면 그냥 두어도 김정은의 의사대로 움직인다. 그것이 마인드 컨트롤 된 인간의 행동 양식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가족의 ‘풍족한 생활’까지 ‘인질’로 있으면 후지모토가 ‘북한 홍보대사’로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후지모토를 불러오기 위해 북한에서는 그의 탈출 후 행동과 발언, 특히 일본 공안·경찰 당국과의 관계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북한 당국에서 행해졌다. 그것은 그가 자택 근처 편의점에서 상사(商社)에 다니는 재일조선인한테 초대장을 받은 것으로도 상상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 활동하는 북한 공작원이 그의 신변 조사와 감시 활동을 2010년부터 해왔던(산케이신문 2012년8월23일 자) 것을 보더라도 분명하다.

산케이신문에 의하면 석면(asbestos) 제거 장치를 둘러싼 사기 사건으로 체포, 기소된 효고현 아마가사키시의 운송 회사 사장 요시다 세이치(일본 귀화 재일조선인·41)의 컴퓨터에서 후지모토씨의 발언과 생활 상황 등을 북한으로 보고했던 사실이 나왔다.

경찰에 의하면 요시다는 2006년부터 북한의 대외 공작기관 정찰총국의 지시를 받으면서 스파이 활동을 계속했고,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후지모토의 주변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요시다 등의 신변 조사 결과 후지모토가 ‘일본이나 한국 정보 당국과 밀접한 관계는 없다’고 판단되어 초청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의 저서도 면밀하게 검토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김정일 총서기의 사생활 폭로는 있었지만 그 이외의 비방 중상은 없었다. 그래서 김정은은 후지모토의 ‘배반’과 지금부터 완수할 ‘역할’을 비교했을 것이다.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위해 ‘아버지 김정일에게의 불경함’은 눈감아 주기로 했다고 판단된다. 후지모토에게는 그만큼 ‘무거운 임무’가 부과되었다는 것이다.

후지모토는 6월16일 북한 에이전트가 신변 안전을 보장한다는 북한 인민 보안부(국방 위원회 산하) 보장서를 보였지만 김정은의 싸인이 없었기 때문에 회답을 보류했다. 그런데 그 후 다시 접촉해 온 에이전트가 ‘2001년의 약속을 완수하자’라며 김정은과 후지모토만이 아는 ‘비밀’을 제시하자 김정은의 초대라는 것을 확신했고, 북한 방문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안전을 위해 옛 상사인 김장성 비서실장이 북경까지 마중 나와 주도록 요구했고, 북한은 이것도 받아 들였다. 북한 방문에 후지모토가 낸 조건을 북한에서 모두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이런 것으로 판단해도 어떻게든 후지모토를 김정은 앞으로 데려 가고 싶다는 북한 강한 의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김정은의 ‘그리워서 보고 싶다’라는 동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어떤 큰 목적이 숨겨져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