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개입 사건으로 우리 정세가 시끄러워진 틈을 타 북한이 연일 박근혜 정권 비난에 나서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남한의) 현 정권은 사실상 붕괴”됐다며 대통령과 청와대, 내각의 총사퇴를 주장하는가 하면, “최악의 정치추문 사건”이 발생했다며 박 대통령을 “당장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단호히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의 강력한 대북 압박 정책에 비난을 일삼아오던 와중에 북한으로서는 ‘호재’가 터졌으니 신이 나서 대통령 비난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 욕할 처지인가?
그런데, 사실 북한의 최근 상황을 보면 북한이 이렇게 마음 편히 남한을 욕할 처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8월 말 함경북도 지역에 기록적인 수해가 발생해 북중 국경 일대의 마을과 국경 초소들이 초토화됐다. 수백 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실제 사망자 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인명피해가 이렇게까지 늘어난 것은 비가 많이 와서 댐의 물이 넘치자 주민들에게 사전고지 없이 물을 방류해버렸기 때문이다. 하류에 살던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저녁시간에 물폭탄을 맞고 떼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자연재해라기보다는 사실상 인재에 해당하는 참사인데, 북한은 당국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 더구나 이런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고 두 달이 지났는데도, 최고지도자라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현장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규모 인명피해를 초래한 당국의 부실대응을 놓고, 또 피해현장을 도외시하는 지도자의 무책임함을 놓고 온나라가 시끄러웠을 것이다. 부실대응의 책임 소재에 대해 형사처벌 뿐 아니라 국정조사, 특검 얘기가 나왔을 것이고, 정권을 담당할 능력이 있느냐며 대통령에게도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을 것이다.
내부 비판 가능성 철저히 봉쇄한 북한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김정은에게 북한이라는 나라는 참 통치하기 편한 나라이다. 여론의 압력이라는 변수가 전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론이 작동하는 국가라면, 김 씨 일가 정권이 그동안 몇십 번은 더 퇴진해야 됐을 것인데 김정은에게는 그런 걱정이 없다.
북한이 강조하는 ‘사상강국’이라는 말은 쉽게 풀어보면 김 씨 일가의 행동에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주체사상, 김일성-김정일주의 등으로 일체화됐다는 의미는 최고지도자의 행동은 신성불가침으로 비판의 영역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북한이 ‘사상강국’을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것이라고 선전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비판 가능성을 철저히 봉쇄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강조이기도 하다.
김정은 정권, 스스로부터 돌아봐야
하지만, 그런 ‘사상강국’의 기반이 예전같지는 않아 보인다. 김일성 집권 시기에는 북한 주민들의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상당 부분 존재했는데, 김정일 시기에 들어 점차 약해졌고 김정은 시기 들어서는 더욱 약해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이제 국가가 아니라 시장을 통해 먹고사는데 익숙해졌고 국가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갖고 있지도 않다. 집권층의 경우 일반 주민보다는 지도자와 결합돼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이냐’는 데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최근 들어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이 예전보다 늘고 있다는 점은 북한 지배계층 내에서도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기에 앞서 스스로부터 돌아봐야 한다. 아직까지는 여론이라는 변수를 신경 쓸 필요가 없지만, 갈수록 확대되는 외부정보의 유입은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점차 변화시키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변화하는 민심의 흐름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고 폭압적 통치기구들의 통제에만 의존하려 한다면 언젠가는 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민심은 천심이다. 역사상 어느 정권도 민심을 거스르고 버틸 수 있는 정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