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는 한반도 5막극 ‘대단원’ 편이다

『大學』에 “物에는 근본적인 것과 말단적인 것이 있고, 일에는 마침과 비롯함이 있나니 먼저하고 나중 할 바를 알면 곧 道에 가까운 것이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라는 구절이 있다. 일을 할 때 무엇이 근본인지를 파악하는 것, 일을 시작하고 끝낼 때 필요한 조건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동시에 사고의 유연성을 전제하고 있다.


응급실에 실려 들어온 외상환자와 걸어서 성형외과를 찾아온 미용환자를 대할 때 의료행위의 본말(本末)이 같을 수 없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과거 정부의 정책을 이어 받기에는 상황이 너무 바뀌었다. 북한의 제3차 핵실험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으면 과거의 사고방식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실제로 결정적인 순간에 유연한 사고를 갖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그래서 『大學』은 유연한 사고 능력을 ‘도에 가깝다’라고 높게 평가하였다.


지난 20년 북핵을 둘러싼 양상의 흐름을 보면 마치 한 편의 5막극을 보는 것 같다. 5막극의 구조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은 북한이 핵의 씨를 뿌리는 것을 제네바협정이라는 대증요법으로 넘겨버린 ‘발단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햇볕정책, 반미주의 및 6자회담과 대규모 북한원조로 북핵의 본질을 호도하였던 ‘전개부’, 햇볕정책과 단절한 이명박 정부는 장마당 경제라는 북한주민의 삶의 방식을 되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지만 북한의 핵개발이 가속화 되면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2차례의 핵실험으로 나타나는 ‘위기’라고 볼 수 있다.


5막극 구조의 핵심은 작은 대립으로부터 시작된 갈등이 운명과 우연으로 인해 외통수로 흐르게 되면서, 증폭된 긴장이 어느 순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어 터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핵위기 역시 5막극의 구조를 따를 수 있는 요인이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첫째, 북핵문제에 명백한 갈등구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한국은 절대로 북핵을 현 상태(status quo)로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북핵 폐기를 시도하든 강한 핵 억지력을 확보하든 한국은 지금 상태를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가자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북핵 위기가 끝없이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다. 북한은 강성대국을 표방하였지만 핵과 미사일에 자원을 쓸어 넣으면서 주민경제는 방기하였다. 주민의 2/3이상은 장마당에서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하며, 북한정권은 착취자일 뿐 지배층 전체가 부패하였다. 이런 통치 질서는 오래 지속가능하지 않다. 북한은 체제내구성이 한계에 달하기 전에 한국의 약점을 노려 회유와 협박, 대규모 갈취 내지는 압박통일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이제 북핵 위기에 5막극의 구조가 존재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시절은 위기에서 절정으로 향하는 부분에 해당할 것이다. 다른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현재의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계속 진행시킬 것임을 명백히 하였다.


“현재 우리가 처한 안보 상황이 너무도 엄중하지만 여기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한민족 모두가 보다 풍요롭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을 만들고자 합니다. 확실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남북 간에 신뢰를 쌓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진정어린 대화제의에도 불구하고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첫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위의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중장기 기획이지만 북한의 핵위협은 지금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다. 어떻게 이 두 개의 뿔을 5년 단임 대통령이 잡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


둘째,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근거로 북핵에 대한 강한 제재를 무력화시키려 할 것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지껄이는 남조선 정부가 어떻게 신성한 우리민족끼리의 원칙을 배신하고 국제공조니 뭐니 하면서 미 제국주의 원쑤놈들과 부화하여 공화국에 제재의 총칼을 겨눌 수가 있는가?’라는 대남비방은 한국이 북한 추가제재에 참가하는 순간 곧 현실이 될 것이며, 한국의 종북좌파들이 이런 논리적 허점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핵 위협의 엄중성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시간격차와 함께 후자가 전자에 대한 대응논리를 무산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핵억지력 확보에 필요한 귀중한 시간을 잃어버릴 가능성은 극히 높다. 즉, 현 상황에서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말단인지,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박근혜 정부의 대답은 아직 구체적으로 들은 바가 없으며, 따라서 이런 문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설득력 역시 ‘잘하겠지’라는 단순한 믿음 이외의 것은 없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는 김정은 정권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는 이미 수십 차례 북한에 전달되었으며 이명박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메시지 전달이 뾰족한 성과가 없었던 이유는 한결같다. 이런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려면 북한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도발과 핵실험을 억제할 확실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도발을 당하였고 박근혜 정부도 이런 억제능력이 현재 없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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