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의 숨은 대권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참여정부 5년 동안의 기록과 비화 등을 소개한 책 ‘문재인의 운명’을 15일 출간했다.
문재인 이사장은 이 책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맺어 온 30여년 간의 인연을 소개하며 향후 자신의 정치적 행보까지 염두에 둔 발언을 담아냈다. 특히 책에는 안희정 충남지사와 영화배우 문성근 씨가 특사로 방북한 사실 등 참여정부 당시 대북정책 비화가 처음 공개됐다.
“정상회담 이전에 안희정 씨와 문성근 씨도 각기 대북접촉을 하긴 했다. 하지만 안희정 씨는 북측에서 먼저 제안이 와, 한번 의논해 볼만한 사안인지 확인해보러 갔던 것이다. 2006년 가을께였다. 안희정 씨 판단에 따르면 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국정원에 알려주고는 그걸로 끝냈다.
문성근 씨도 그에 훨씬 앞서 2003년 가을쯤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북한을 다녀왔다. 정상회담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에 임하는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시키는 수준이었다. 그런 접촉이 분위기 조성에는 도움이 됐을 것이다.”
문 이사장은 또 책을 통해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이인규 중수부장에 대해서는 “대단히 건방졌다”고 비난했다.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 조사를 지켜보면서 검찰이 아무 증거가 없다는 걸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대통령과 박연차 회장의 말이 다른데 박 회장의 말이 진실이라고 뒷받침할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통화기록조차 없었다.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서거 후 상속신고를 하면서 보니 부채가 재산보다 4억원 가량 더 많았다. 좀 더 길게 보면 결국 사실은 다 밝혀질 것이었다. 법적으로 규명될 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견디셨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한 2009년 5월 23일 상황에서 대해서는 “새벽, 사고 소식을 접하고 양산 부산대병원에 도착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은 인공심장박동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의학적으로는 사망한 상태였다. 대통령님 상태로 보면 사고현장에서 바로 돌아가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의 상태는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처참한 모습’이었다. 의료진이 황급히 찢어진 부분을 모두 봉합하고 피도 깨끗이 닦아 권 여사는 이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도 설명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대검 중수부 폐지에 대해서는 “대검 중수부 폐지는 검찰의 탈정치, 정치 중립을 위해 상당히 중요한 과제였지만 역설적으로 정치 중립의 요구 때문에 손을 대지 못했다”고 했고, “중수부 폐지를 본격 논의하기 전에 대선자금 수사가 있었고 그 수사를 중수부가 하면서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대단히 높은 신뢰를 받게 돼 중수부 폐지론이 희석됐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카드로 꺼냈던 강금실 법무장관 기용 비화도 소개하고 있다. “강금실 법무장관은 내가 추천했다. 환경부 장관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당선인이 법무부 장관으로 하자고 했다. 남성 전유물처럼 생각돼 왔던 자리에까지 여성들을 과감하게 발탁해야 한다는 것이 당선인 뜻이었다”고 밝혔다.
또 노동부 장관을 민주노동당이 추천하는 인사로 기용하려 했으나 포기했다는 내용도 실려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노동당이 추천하는 인사를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시키고 싶어 했으나 민노당이 수용할 가능성이 전혀 없고 오히려 ‘정치공작’, ‘야합’ 등 지적을 받을 수 있어 말도 꺼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예방했을 때 노 대통령이 ‘쇠고기 협상은 뒤로 미루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며 “참여정부 말부터 쇠고기 개방 추진에 앞장섰던 한덕수 전 총리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책에는 문 이사장의 향후 정치적 행보를 시사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책의 제목 ‘문재인의 운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82년 노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운명’이라고 표현한 문 이사장은 “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며 “시대적 소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등 내년 총선·대선 등 주요 정치 일정에 직간접적인 활동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