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한 달 간 현지지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북러 정상회담까지 취소되자 그의 건강 이상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커지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이 취소되자 복수의 러시아 정보소식통을 통해 ‘건강 상의 이유’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정일은 지난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여드레 동안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6000㎞ 가량의 방중(訪中) 일정을 소화했다. 건강한 사람이 열차로 이동하기에도 버거운 거리다. 실제 어느 정상도 상대국 방문에 이러한 강행군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김정일의 방중 일정을 의료진이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나이와 뇌졸중 병력을 감안하면 정상적인 여정이 아님은 분명하다.
김정일은 이번 방중을 통해 중국의 경제·외교적 지원을 최대한 끌어내는 목표를 가졌지만 기대에 미쳤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의 해를 코 앞에 두고 대대적인 경제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특구 개발 이외에 눈에 드러나는 성과는 없어 보인다. 아무래도 내년 잔치를 치를 만큼 중국의 지원이 충분치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최근 강성대국이라는 명칭을 두고 수위를 낮춰 ‘강성국가’로 바꿔 부른 것에서도 이러한 정황이 드러난다.
오히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남북관계 개선 요구를 받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로부터는 개혁개방을 요구 받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다 양광례(梁光烈) 중국 국방부장도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지역안보포럼에서 중국이 북한과 소통하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밝혀 천안함·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양국이 이를 두고 입장이 순탄치 않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북한은 방중 이후 대남 비난 성명 수위를 급격히 높였다. 각종 대남 담화를 통해 “南과 상종하지 않겠다”고 협박한 데 이어 남측과 정상회담 예비접촉 사실이 있었다면서 돈 봉투까지 내놓았다는 폭로 아닌 폭로로 남측을 협박했다. 이후에는 남측으로 표류한 주민 송환, 전방부대의 사격판 표지, 대북관을 담은 구호, 금강산 관광까지 연쇄적으로 문제 삼았다. 중국에 대한 우회적인 불만 표시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일은 최근 한 달간 현지지도에 나서지 않았다. 다만, 몇 차례 실내 공연만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치 실패로 인한 권력 누수를 현지지도로 메우던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현장 방문을 중단한 것은 그의 건강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배가시킨다. 고령에 무박으로 강행군 일정을 소화한 방중 후유증과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 미흡에 따른 스트레스, 내부 3대 세습 및 강성대국 등의 난제가 산적하면서 건강이 일시적으로 나빠졌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정보기관에 입수된 김정일 방중 필름에서는 그의 왼쪽다리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수행원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는 뇌졸중 환자에게 금주·금연, 스트레스 관리, 과로를 피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권하고 있다. 뇌졸중 병력 이외에도 다양한 합병증을 앓고 있는 김정일이 최소한 이러한 수칙도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커 건강 이상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판단이다.
일단, 우리 정보 당국은 김정일의 건강에 큰 이상 증세가 보이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최근 행보는 건강 이상에 대한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 한 달 여간 현지지도 중단과 러시아 정상회담 취소가 그의 건강 문제와 결부돼 있다면, 한반도는 다시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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