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南北 고위급 접촉을 제의한 진짜 이유

오랫동안 시대세평(細評)을 쓰지 못했다. 작년 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필자의 비판적 심정을 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데일리NK가 개편을 하고, 구두끈을 다시 조이는 심정으로 칼럼을 써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통일전략에 대해 그동안 연구한 것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랜만에 다시 쓰게 된 칼럼의 주제는 다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다. 바로 얼마 전 7년 만에 열렸다는 남북고위급 회담에 대한 이야기다.


언론에서는 ‘이산가족상봉’과 ‘한미정기군사훈련 중단’을 연계시켰던 북한이 상호비방 중단으로 만족하고 ‘통 큰 양보’를 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북한에 인도적 지원 재개, 나아가 북한경제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인프라 구축지원 가능성, 그리고 이렇게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북핵 문제 해결과의 연계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언론과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남북고위급 회담의 배경으로 지난해 장성택 처형 후 김정은이 처한 정치, 경제, 외교적 위기를 한국의 도움으로 돌파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목이 말라 회담에서 우물을 판 것은 북한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지난해에 북한이 반드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올라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부터 초강세로 나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와 제3차 핵실험을 하고 심지어 한국과 미국에 핵전쟁을 위협하였다. 그리고 핵과 경제 병진정책을 주장하더니, 작년 말에는 고모부 장성택을 참살하였다. 한마디로 김정은이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면서 통치를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의 행동거지는 엉망이었고, 북한의 상황 역시 엉망을 향해 가고 있다. 심지어 장성택의 판결문에는 김정은 얼굴에 먹칠을 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몇 년 사이에 건설 건재기지들을 폐허로 만들다시피 하고,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마구) 팔아먹도록 하였으며,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고,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 놈을 부추겨 수천억의 우리 돈을 남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이다.(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판결문)”


“판결문의 이 내용은 북한의 건설, 대외무역, 특수경제지대운영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또한 북중무역의 불공정성을 지적하고, 김정은의 지휘로 진행됐다던 화폐교환이 실패했고 이로 인해 민심이 극도로 어지러워졌으며, 현재도 그런 상태임을 확인하는 반김정일, 반김정은, 반사회주의, 반중국 선언이다.” (김광진, 「장성택 처형, 김정은에게 독인가 약인가?」, 계간 『시대정신』 2014년 봄 호)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다시 한 번 한국의 선의(善意)를 이용해서 경제난을 회피해 보려는 작전을 구사할 것이라는 점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 남북고위급 회담이 오로지 김정은의 입지 확보를 위한 전술적 시도라고 보는 것은 짧은 해석이다. 아무리 계산해도 타는 것이 유리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김정은 정권이 올라탄 것뿐이다.


II


한국 대북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북한의 행태를 지난 수십 년간의 맥락과 연장선상에서 보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희망의 관점에서 ‘낙관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과 그 입안자들의 ‘북한정권 무조건 이해해주기’의 영향으로 인해,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대북정책을 선의와 희망으로 포장해야 하는 구조적 약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은 이점을 이용하여 북한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내용으로 한국과의 회담을 성사시키고 진행시킬 수 있는 것이다. 북한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한국에 대한 요구의 수준을 조절하는 일뿐이다. 지금까지 남북회담의 모든 주도권을 북한 측이 갖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한편 한국은 항상 ‘을’의 입장에서, 북한의 반응, 즉 북한의 선의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점을 이해하려면 지난 1년을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박 대통령은 “북핵을 이고 살 수는 없다”고 천명하였지만, 사실상 작년 한 해 동안 한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한 것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현 정부의 북한 비핵화 전략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진전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작년의 정세는 신뢰구축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필자는 작년에 한국 정부가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잡아야 함을 역설하였다.


결국 이번 회담을 제안하고 성사시킨 측은 북한이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한미군사훈련과 연계시켰지만, 아마도 처음부터 북한의 속셈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올라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올라타면 자동으로 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인도적 지원이고, 경제원조, 경제협조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대규모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쌀과 비료를 주는 것만으로도 북한으로는 대규모 원조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쌀과 비료 모두 북한의 전략물자다. 벌써 북한 경제개혁의 인프라 구축이 60조 규모의 건축경기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입맛 다시는 사람들이 있다.


냉정하게 볼 때 현 상황에서 대북현안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북핵이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란 우선 북한을 달래는 것이고, 달래는 동안은 협박을 할 수 없고, 한 번 달래기 시작하면 쉽게 표정을 돌변하여 협박으로 넘어갈 수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신념이란 ‘정치적 신념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이다. 즉 북한 핵문제의 급박성에 비해 한국 정부의 장기적 대책은 시간적으로 정합(整合)적이지 않다. 즉 이 기간 내에도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를 진행시킬 것이고, 5년 임기의 박근혜 정부가 새로운 대북정책을 내놓을 수 없는 시기에 이르러 대륙간 탄도탄 실험과 제4차 핵실험을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 하면 북한의 핵보유는 사실상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거의 물리적 현상과 다름없이 기계적으로 예상 가능한 일이다.


III


북핵 문제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은, 이번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구체적 방안을 서로 교환하면서 북핵문제의 ‘시급성(urgency)’을 언급했다는 점에서도 분명하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도 이 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북핵을 이고 살 수는 없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 좋았던 시절’인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 하에서도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북한정권이 수령체제를 안전하게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핵 공갈을 통한 적화통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개발을 통해 ‘회심의 마지막 한 방’을 노려왔다고 보는 것이 모든 경험적 사실에 비추어 옳은 판단이다. 그러나 이런 판단을 정부도 국민도 회피하고 있다.


이번 남북 고위급 회담 이후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북한의 최고 수뇌부가 국토 양단과 민족 분열의 역사에 끝장을 내는 결심을 굳혔다. (…) 최고 수뇌부가 통일에 관한 결심을 옮겨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남조선 당국이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한다면 민족적 단합과 평화번영, 자주통일의 새 국면이 열릴 수 있다”고 전했다.


“최고 수뇌부의 통일에 관한 결심”이란, 공식적으로 해석하면, ‘외세를 물리치고 우리 민족끼리 통일하자’는 것이고, 여기에 한미동맹 해체를 전제로 삼는 것은 북한과 한국 좌파의 오래된 입장이다. 조선신보가 “북의 중대 제안 가운데 남측이 미국과의 정책조율 없이 단독으로 결심할 수 있는 문제부터 합의가 이루어진 셈”이라는 비꼬는 문구를 넣은 이유도 명백하다. 한미동맹 해체로 나아가라는 이야기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 ‘최고 수뇌부의 통일에 관한 결심’에 소극적으로라도 호응할 수 없음은 명백하고, 북한 역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종착역으로 수령체제의 포기를 의미하는 개혁개방과 자유 민주주의 ‘대박 통일’에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북핵 문제를 ‘출구전략’으로 일단 미루고, 6·15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여 남북경제공동체를 시작하고, 한미동맹을 재조정(해체)하면서 남북국가연합을 출범시키겠다는 민주당(문재인 前 대통령 후보)의 대북정책이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구미에 당길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올라타고 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해야 할 일은, 당연히 따라오는 경제적 지원은 논외로 하고, 한 가지 밖에 없다.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만드는 것, 그뿐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가야할 길도 명백하다. 그것은 북핵 철거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는 일이다. 남북 고위급 회담이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란 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을 정해야 한다.


첫째, 북한에 아동과 임산부 구호, 의료지원 등의 인도적 지원을 하되, 몰락한 북한경제를 지지해 주는 경제원조와 경제협조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북한의 풀뿌리 시장경제화를 약화시키고 북한 엘리트의 치부를 도와줄 뿐 어떤 생산적 의미도 없다.


둘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시한을 정해야 한다. 즉 박근혜 정부가 대북정책을 전면 전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두고 그 이전에 북핵문제 해결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워야 한다.


셋째, 민간부분의 대북방송, 대북전단, 대북 정보제공 등에 정부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대륙간 미사일 발사와 북핵 실험을 역이용하여 외교, 정치, 군사적인 측면에서 대규모 공세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집약하여 북한의 핵무장에 합심하여 대응할 수 있는 국민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북핵문제에 강하게 대응하여 북한 급변사태를 유도하고, 이를 자유 민주주의 통일로 이어가도록 대담한 전략을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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