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군사교관 유한흥, 동녕현성 전투

 

여름해가 유난히 길어 진 요즘, 드문히 내리는 여름비가 시원하게 마른 땅을 적시고, 산 넘어 심은 보리가 햇볕에 여물어가는 이 계절, ‘다시쓰는 김일성 혁명역사’ 제 28편으로 여러분을 찾아 온 국민통일방송원 박주희입니다.항상 우리방송에서 큰 역할을 해주시는 김형수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박 :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

박 : 김 선생님 오늘 전개할 내용은 김일성의 군사교관 유한흥과 동녕현성 전투인데요, 이 내용에 앞서 전번시간에 언급 한 반 민생단 투쟁 이후 김일성의 그 후 행보를 간단히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김 : 네, 전 시간에 언급했지만 김일성은 중공당 길동국 반경유의 도움으로 위험을 넘기게 되었고, 그 후 정확히 말하면 1937년 7월 연길현 유격대와 함께 팔도구 전투에 참가하게 됩니다. 김일성은 이 전투를 앞두고 유명한 군사간부 왕덕태와 만나게 된다. 김일성에게 매력을 느낀 왕덕태는 김일성을 연합부대 참모장으로 임명하였고 당시 김일성은 21살이었다.

팔도구 전투가 끝난 뒤 김일성은 오백룡을 데리고 양수천자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일행이 양수천자에 도착하자 현위원회 통신원이 말을 타고 기다렸다. 사연인 즉 김일성이 인질을 납치해 빼앗아 낸 자금의 출처를 캐물었다. 통신원은 정말 인질이 내 준 경제모금이 자발적인 것이냐고 하자 김일성은 지주가 자발적으로 낸 것이라고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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