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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한국 정부는 추가적인 쌀, 비료 지원을 중단할 것임을 천명했다.
이종석 장관은 부산에서 열린 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6자회담 복귀와 쌀 50만t, 비료 10만t 지원을 연계하겠다는 입장을 북측에 통보했다. 이러한 정부의 쌀 비료지원 중단 조치는 과연 현명한 정책 선택이었을까?
그 동안 한국 정부는 항상 대북 저자세 외교만 한다고 비판받아 왔다. 그러던 차에 이번 중단조치를 통해 한국 정부도 북한에 강하게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줄곧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해 왔던 야당과 우파 진영도 이 조치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편이다.
물론 필자도 한국 정부가 당당한 자세를 보여준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정책이 과연 최선의 대응책이었는지는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정부는 쌀, 비료 중단이 아니라 금강산 관광 정부지원금이나 입주업체 대출특혜 등 개성공단 보조금 중단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 이유는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쌀, 비료 중단이 아니라 금강산, 개성 공단 보조금 중단이 7월 15일 유엔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유엔 결의안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각국에게 요구하고 있는 유엔 결의안 내용을 보자.
“유엔 회원국들이 미사일 혹은 미사일 관련 물품, 재료, 제품, 기술을 북한에서 구매하지 않도록 하고 북한의 미사일이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과 관련된 재정적 자원을 북한에 이전하지 말고 이러한 행위를 감시하도록 회원국들에 요구한다.”
유엔 결의안은 각 유엔 회원국에 미사일이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에 전용될 수 있는 돈을 북한에 지원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에 대한 한국 정부의 보조금은 결의안의 금지행위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이종석 통일부 장관 이야기처럼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이 순수 민간 차원에서만 진행된다면 유엔 결의안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에는 순수 상업성 거래만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정부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이 여전히 들어가 있다.
금강산 관광 정부보조금부터 끊어라
즉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순수 민간 영역과 정부 지원 영역을 구분해서 말한다면 순수 민간 영역은 유엔 결의안에 저촉되지 않으나 정부 지원 영역은 충분히 저촉될 소지가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 터져 나오는 한국정부에 대한 불만도 이런 맥락이다.
따라서 금강산, 개성에 대한 정부 보조금은 유엔 결의에 따라 언제든지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이 보조금을 계속 유지한다면 미국, 일본 과의 외교 관계 악화도 불가피하다.
둘째, 쌀, 비료 중단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정치적 무기로 삼은 것이다. 인도적 지원은 결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 미국도 최근 인도적 지원을 줄여 나가고 있지만 그 이유는 북한이 분배의 투명성을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결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기 때문에 인도적 지원을 줄인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인도주의 지원을 외교적 협상 카드로 삼은 것은 한국이 스스로 외교 후진국, 인권 후진국임을 과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적 지원은 WFP 등 국제기구와 연계하여 지원하다는 원칙을 천명하는 게 옳았다.
셋째, 인도적 지원 중단으로 이산가족 상봉 무산의 빌미를 주었다. 북한은 쌀, 비료 지원 중단 조치에 맞서 바로 이산 가족 상봉 중단을 선언했다. 북한의 논리는 한국이 인도적 사업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인도적 사업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북한의 억지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빌미를 준 것은 분명하다.
설령 쌀, 비료 중단 대신에 금강산, 개성공단 정부 보조금 중단을 선언했어도 북한은 이산가족 중단을 발표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이럴 경우는 북한이 그 조치에 대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쓴다. 금강산, 개성공단 정부 보조금은 비인도적 경제협력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인도적 사업인 쌀, 비료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 무산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가 그 책임의 반은 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넷째, 실제 북한 정부에 가하는 압박의 강도에 있어서도 쌀, 비료 중단보다는 금강산, 개성 정부 보조금 중단이 훨씬 효과가 크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북한 정권은 북한 주민들의 안녕에 큰 관심이 없다. 오직 정권 유지에만 관심이 있다. 쌀, 비료를 중단은 주민들만 고생시킬 뿐 정권 유지에는 직접적인 타격이 없다. 그에 반해 금강산,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정부 보조금은 현금이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의 돈 줄을 조이는 효과가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본다. 우선 금강산만이라도 정부 보조금을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하라. 그 대신 쌀, 비료 등의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라.
당장 정부 체면 때문에 힘들다면 직접 지원보다는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을 할 수 있다. 직접지원보다는 이렇게 보내는 것이 투명성 확보에 유리하다. 안 그래도 이번 여름 장마 때문에 평양 주민들까지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김정일 정권과 북한 주민을 분리해서 대응하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하태경/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